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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김연아
金姸兒|Kim Yu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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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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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 5일 (3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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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중구 도당동
(現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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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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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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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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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씨 (慶州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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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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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cm, 47kg, 240mm, O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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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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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현석(1958년생), 어머니 박미희(1958년생), 언니 김애라(198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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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 고우림(2022년 10월 22일 결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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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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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초등학교 (졸업)
도장중학교 (졸업) 수리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과정 수료)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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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세례명: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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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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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댓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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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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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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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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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훈장 모란장(2012년 수훈)
체육훈장 청룡장(2016년 수훈) |
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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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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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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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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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은메달리스트입니다.
2. 평가
"신이 내린 재능입니다.
이런 재능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입니다.
김연아가 연기한 걸 보고 나면 난 그냥 코치하는 걸 집어치우고 싶다.
그녀가 등장해서 한 동작만 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난 일어나서 경기장을 나가고 싶어집니다.
"- 알렉산더 줄린(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코치이자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아이스 댄스 은메달리스트), 2007 컵 오브 러시아 당시"기술적인 측면에서,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 테드 바튼(Ted Barton, 신채점제를 창시하는 데 참여한 인물)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딴 직후"김연아의 연기는 여자 피겨 스케이팅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렸습니다.
기술적으로 모든 걸(The Whole Package) 갖췄습니다.
"- 크리스티 야마구치(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김연아는 토탈 패키지다.
내가 그녀의 연기를 볼 때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없습니다.
"- 도로시 해밀(1976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김연아는 아무 약점이 없습니다.
그 누구하고도 김연아를 비교해보라.
김연아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그 어떤 제도에서든, 장소에서든, 시간에서든, 승리는 그녀의 차지다.
"- 스캇 해밀턴(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Long live the queen!"- 미국의 유니버설 스포츠 메인페이지- 톰 해먼드(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미국 NBC 방송의 해설진)"지금 이 순간은 피겨 스케이팅 역사의 위대한 한 순간입니다.
김연아는 나비처럼 사뿐히 경기장을 즈려밟고 갔습니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해설 중"김연아는 역대 가장 위대한 스케이터다.
완벽한 안무로 10점 만점에 10점, 20점 만점에 20점,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을 것입니다.
25년간 피겨 스케이팅을 해설하면서 이런 연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 2013 세계선수권 프리 스케이팅 캐나다 SRC 해설 중"이 선수의 스케이팅은 참 쉬워보이고, 아름답고, 가슴 아프죠.
"- 2013 세계선수권 프리 스케이팅 미국 UNIVERSAL SPORTS 해설 중"언제 어디서든지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타면 항상 놀라운 고요함이 흐릅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대함을 마주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영국 BBC 해설 중"대회라기보단 차라리 대관식이었습니다.
"- AP 통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데이빗 홀버스텀은 마이클 조던에 대해 말하길 '농구를 평생 5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조던을 보면 이 사람이 주목해야 할 사람인 것을 바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목요일 김연아가 바로 그랬다.
"- 뉴욕 포스트,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1970년대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봐왔지만 은퇴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한 선수는 처음입니다.
"- 장 크리스토프 베를로(Jean Christophe Berlot, 아이스네트워크 기자)"그녀는 내가 본 가장 빠른 스케이터다.
"- 미셸 콴(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사람들이 김연아를 '유나 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난 그녀를 매우 좋아합니다.
내가 지금 젊은 선수였으면 김연아를 본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 이리나 슬루츠카야(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그녀는 이미 시스템이 존재하던 곳에서 나타난 단순한 재능 있는 스케이터가 아닙니다.
어떤 피겨의 전통도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서 등장해 한국인으로서 어떤 경우에서든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무슨 메달을 따든 그녀가 하는 건 다 최초가 아니었나? 올림픽에서 온 국민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어야 했던 순간의 그 부담감을 생각하면 매우 놀랍다.
우리(프랑스)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싱글 부문 금메달입니다.
"- 필립 펠리에(프랑스의 유럽선수권 해설위원), 2010 세계선수권 해설 도중"(김연아의 점프처럼) 리듬을 타고 가볍게 날아서 부드럽게 착지하는 점프는 남녀 선수 통틀어 본 적이 없습니다.
"- 야마다 마츠코(아사다 마오의 前 코치)"앞으로 보실 합계 점수를 구분하는 기준표입니다.
195점 이상은 '경이로움'이고 '뛰어남'(180~194점)과 '매우 좋음'(170~179점)에 해당하는 점수도 나와 있습니다.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210점 이상의 단계.
바로 김연아.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미국 NBC 중계 중"어떻게 하면 김연아가 될 수 있을까요? 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선물이에요.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갈라 프로그램 미국 NBC 해설 중"나는 당신(김연아)의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 모두 매우 즐겁게 보았고, 당신의 금메달 연기의 우아함과 경기력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빙상 위에서나 밖에서나 올림픽 정신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 힐러리 클린턴, 김연아에게 보낸 편지 중“러시아의 마린스키와 볼쇼이, 영국의 로열 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유명 발레리나들의 연기를 많이 봐왔지만 김연아의 표현력은 오히려 그들을 뛰어넘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 장일범(음악평론가, KBS 1FM 가정음악 진행자)“운동만 하면서 달려온 사람, 김연아에게서 ‘세계 퀸’의 거만함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 김병만"코스트너와 아사다는 '우리가 어떻게 연아를 따라갈 수 있을까?'의 문제가 아닌 시니어로 올라오는 신예들을 어떻게 막을까를 생각해야겠죠.
"- 로빈 커즌스(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남자싱글 금메달리스트), BBC 2013 세계선수권 해설 중"그녀는 언제나 퀸 유나(Queen YU-NA)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단지 올림픽 은메달을 더 가졌을 뿐이죠.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갈라 프로그램 미국 NBC 해설 중스펙타클한 광경입니다.
천사와도 같은 포즈다.
- 2013 세계선수권의 한 이탈리아 해설자의 해설 중하느님, 맙소사.
정말 굉장합니다.
- 2013 세계선수권의 한 미국 해설자의 해설 중피겨 여왕이 돌아왔습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중 성화봉송 당시 배기완 아나운서의 멘트저는 항상 연아를 이기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존경하기도 하고 경외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분들이 질문할 때는 언제나 '나 자신이 라이벌'이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연아를 이기는 게 목표였습니다.
연아가 없었다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선수 생활에 임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시 만난다면 연아와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 위해 영어와 한국어를 배울 생각도 있습니다.
- 일본 스포츠 잡지 '넘버' 中 아사다 마오 인터뷰.
이런 재능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입니다.
김연아가 연기한 걸 보고 나면 난 그냥 코치하는 걸 집어치우고 싶다.
그녀가 등장해서 한 동작만 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난 일어나서 경기장을 나가고 싶어집니다.
"- 알렉산더 줄린(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코치이자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아이스 댄스 은메달리스트), 2007 컵 오브 러시아 당시"기술적인 측면에서,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 테드 바튼(Ted Barton, 신채점제를 창시하는 데 참여한 인물)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딴 직후"김연아의 연기는 여자 피겨 스케이팅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렸습니다.
기술적으로 모든 걸(The Whole Package) 갖췄습니다.
"- 크리스티 야마구치(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김연아는 토탈 패키지다.
내가 그녀의 연기를 볼 때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없습니다.
"- 도로시 해밀(1976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김연아는 아무 약점이 없습니다.
그 누구하고도 김연아를 비교해보라.
김연아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그 어떤 제도에서든, 장소에서든, 시간에서든, 승리는 그녀의 차지다.
"- 스캇 해밀턴(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Long live the queen!"- 미국의 유니버설 스포츠 메인페이지- 톰 해먼드(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미국 NBC 방송의 해설진)"지금 이 순간은 피겨 스케이팅 역사의 위대한 한 순간입니다.
김연아는 나비처럼 사뿐히 경기장을 즈려밟고 갔습니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해설 중"김연아는 역대 가장 위대한 스케이터다.
완벽한 안무로 10점 만점에 10점, 20점 만점에 20점,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을 것입니다.
25년간 피겨 스케이팅을 해설하면서 이런 연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 2013 세계선수권 프리 스케이팅 캐나다 SRC 해설 중"이 선수의 스케이팅은 참 쉬워보이고, 아름답고, 가슴 아프죠.
"- 2013 세계선수권 프리 스케이팅 미국 UNIVERSAL SPORTS 해설 중"언제 어디서든지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타면 항상 놀라운 고요함이 흐릅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대함을 마주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영국 BBC 해설 중"대회라기보단 차라리 대관식이었습니다.
"- AP 통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데이빗 홀버스텀은 마이클 조던에 대해 말하길 '농구를 평생 5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조던을 보면 이 사람이 주목해야 할 사람인 것을 바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목요일 김연아가 바로 그랬다.
"- 뉴욕 포스트,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1970년대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봐왔지만 은퇴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한 선수는 처음입니다.
"- 장 크리스토프 베를로(Jean Christophe Berlot, 아이스네트워크 기자)"그녀는 내가 본 가장 빠른 스케이터다.
"- 미셸 콴(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사람들이 김연아를 '유나 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난 그녀를 매우 좋아합니다.
내가 지금 젊은 선수였으면 김연아를 본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 이리나 슬루츠카야(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그녀는 이미 시스템이 존재하던 곳에서 나타난 단순한 재능 있는 스케이터가 아닙니다.
어떤 피겨의 전통도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서 등장해 한국인으로서 어떤 경우에서든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무슨 메달을 따든 그녀가 하는 건 다 최초가 아니었나? 올림픽에서 온 국민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어야 했던 순간의 그 부담감을 생각하면 매우 놀랍다.
우리(프랑스)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싱글 부문 금메달입니다.
"- 필립 펠리에(프랑스의 유럽선수권 해설위원), 2010 세계선수권 해설 도중"(김연아의 점프처럼) 리듬을 타고 가볍게 날아서 부드럽게 착지하는 점프는 남녀 선수 통틀어 본 적이 없습니다.
"- 야마다 마츠코(아사다 마오의 前 코치)"앞으로 보실 합계 점수를 구분하는 기준표입니다.
195점 이상은 '경이로움'이고 '뛰어남'(180~194점)과 '매우 좋음'(170~179점)에 해당하는 점수도 나와 있습니다.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210점 이상의 단계.
바로 김연아.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미국 NBC 중계 중"어떻게 하면 김연아가 될 수 있을까요? 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선물이에요.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갈라 프로그램 미국 NBC 해설 중"나는 당신(김연아)의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 모두 매우 즐겁게 보았고, 당신의 금메달 연기의 우아함과 경기력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빙상 위에서나 밖에서나 올림픽 정신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 힐러리 클린턴, 김연아에게 보낸 편지 중“러시아의 마린스키와 볼쇼이, 영국의 로열 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유명 발레리나들의 연기를 많이 봐왔지만 김연아의 표현력은 오히려 그들을 뛰어넘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 장일범(음악평론가, KBS 1FM 가정음악 진행자)“운동만 하면서 달려온 사람, 김연아에게서 ‘세계 퀸’의 거만함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 김병만"코스트너와 아사다는 '우리가 어떻게 연아를 따라갈 수 있을까?'의 문제가 아닌 시니어로 올라오는 신예들을 어떻게 막을까를 생각해야겠죠.
"- 로빈 커즌스(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남자싱글 금메달리스트), BBC 2013 세계선수권 해설 중"그녀는 언제나 퀸 유나(Queen YU-NA)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단지 올림픽 은메달을 더 가졌을 뿐이죠.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갈라 프로그램 미국 NBC 해설 중스펙타클한 광경입니다.
천사와도 같은 포즈다.
- 2013 세계선수권의 한 이탈리아 해설자의 해설 중하느님, 맙소사.
정말 굉장합니다.
- 2013 세계선수권의 한 미국 해설자의 해설 중피겨 여왕이 돌아왔습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중 성화봉송 당시 배기완 아나운서의 멘트저는 항상 연아를 이기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존경하기도 하고 경외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분들이 질문할 때는 언제나 '나 자신이 라이벌'이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연아를 이기는 게 목표였습니다.
연아가 없었다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선수 생활에 임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시 만난다면 연아와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 위해 영어와 한국어를 배울 생각도 있습니다.
- 일본 스포츠 잡지 '넘버' 中 아사다 마오 인터뷰.
3. 국내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에 한국에서의 피겨 스케이팅은 말 그대로 관심없던 종목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한국은 그야말로 빙상 스포츠 중에서도 레이스에만 특화된 나라였지, 피겨계에는 정부적 관심도, 국민적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도 국내 후원이나 투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됩니다.
만약 김연아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계속 피겨 스케이팅 불모지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피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실제로 주니어 시절 김연아가 한창 두각을 나타내던 때 포털의 뉴스 댓글에는 '시니어에서 입상해야 진짜 실력이지, 설레발치지 마라'는 악플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악플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입장이 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김연아 이전에도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라고 스포츠 뉴스에 소개되는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그렇게 소개된 인물 중 특출나게 두각을 보인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김연아의 잘못이 아니라 이런 언론의 과한 설레발 전례 때문에 생긴 부정적인 견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김연아의 전성기 이후 차세대 피겨 선수들이 김연아만큼 대회를 제패하거나 이에 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는 본의 아닌 부작용을 낳게 되기도 했습니다.
국제무대에서도 전통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던 유럽이나 미국,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피겨계에서는 겨우 올림픽 출전권만 얻어서 그마저도 최하위권만 기록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이 리듬체조나 싱크로나이즈 종목과 같이 예술성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스포츠라는 특성 상, 발레리나 같은 체형과 미모가 부각되며 대중에게 어필되었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열악한 지원 + 부상 + 타국과의 비교 + 연습방해 영상 등 + 피날레로 편파판정 논란까지 합쳐져서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한국에서는 단순한 스타 이상의 존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선수로서의 업적을 떠나 개인적인 선행과 기부 활동 또한 많이 알려져 현재 김연아의 위치는 2000년대 등장한 스포츠 스타 중에서 최고의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인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피겨요정, 국민 여동생 등 온갖 별명을 보유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나이에 주목을 받은 박태환도 취약한 종목에서의 성공 + 잘생긴 외모 덕에 함께 주목을 받고 국민여동생, 국민남동생 소리를 들으며 광고를 같이 찍기도 했습니다.
인기 종목인 축구가 당시 국제대회에서 부진하고 있던 시기라 "축구장에 물 채워서 태환이 수영장으로 쓰고 겨울엔 얼려서 연아 스케이트장으로 써라"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피겨요정을 뛰어넘은 '피겨 여왕'이나 '연느'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당시 그녀의 전국적 인기는 국내의 웬만한 탑급 한류 K 팝스타들도 뛰어넘을 정도였습니다.
실력이 제대로 피어난 2009-10 시즌 때는 김연아가 광고한 제품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자동차, 가전제품(ex.
에어컨), 핸드폰, 화장품, 악세사리, 금융광고 등등)로 광고계를 휩쓸어, 피겨 프로그램 보면서 김연아를 보고, 잠시 광고타임 동안 김연아를 보고, 다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김연아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인기가 신기했는지 외신에서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아닌 락스타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은퇴한 지 오래인 현재까지도 꾸준히 한국 피겨 스케이팅계에 관심을 보이고 기여하는 인물입니다.
국민적 관심도가 김연아를 계기로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것에 더해, 김연아 본인 역시 잠정 은퇴 수준이었던 공백기를 끊고 다시 돌아온 이유도 '한국 피겨계를 위해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서'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연아의 존재로 인해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의 숫자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들이 바로 소위 말하는 '연아 키즈' 세대로, 김연아 시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선수 풀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도 많은 유망주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활동 이외에도 국내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시상자로 나서기도 하고,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홍보하기도 하고, 빙상장 건설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한국 체육계의 빈곤한 환경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녀의 활약 이후로 수많은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들이 생기고 있고, 범국민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또한 그녀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으로 밝힌 컴백 이유 중 하나가 '후배들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피겨계에 금전적 지원 및 여러 가지로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후에 한국 피겨계의 대모라고 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골프계에서의 박세리와 여러모로 위치가 비슷합니다.
2012년 에듀모아에서 초등학생 6,39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48%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 스포츠 역사를 뒤져봐도 국내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운동선수는 손가락에 꼽습니다.
상술했듯 한국에선 생소한 종목인 피겨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천재라는 점,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는 점, 올림픽 피겨 역사상 최악의 편파판정 피해를 당하고도 심판과 러시아를 원망하지 않고 깨끗이 승복했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은퇴한 지금도 전 세대에게서 뜨거운 국민적 사랑을 받고있는 인물이며 여러 레전드 선수들과 더불어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웠던 슈퍼스타 중 한 명이었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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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한국은 그야말로 빙상 스포츠 중에서도 레이스에만 특화된 나라였지, 피겨계에는 정부적 관심도, 국민적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도 국내 후원이나 투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됩니다.
만약 김연아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계속 피겨 스케이팅 불모지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피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실제로 주니어 시절 김연아가 한창 두각을 나타내던 때 포털의 뉴스 댓글에는 '시니어에서 입상해야 진짜 실력이지, 설레발치지 마라'는 악플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악플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입장이 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김연아 이전에도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라고 스포츠 뉴스에 소개되는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그렇게 소개된 인물 중 특출나게 두각을 보인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김연아의 잘못이 아니라 이런 언론의 과한 설레발 전례 때문에 생긴 부정적인 견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김연아의 전성기 이후 차세대 피겨 선수들이 김연아만큼 대회를 제패하거나 이에 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는 본의 아닌 부작용을 낳게 되기도 했습니다.
국제무대에서도 전통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던 유럽이나 미국,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피겨계에서는 겨우 올림픽 출전권만 얻어서 그마저도 최하위권만 기록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이 리듬체조나 싱크로나이즈 종목과 같이 예술성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스포츠라는 특성 상, 발레리나 같은 체형과 미모가 부각되며 대중에게 어필되었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열악한 지원 + 부상 + 타국과의 비교 + 연습방해 영상 등 + 피날레로 편파판정 논란까지 합쳐져서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한국에서는 단순한 스타 이상의 존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선수로서의 업적을 떠나 개인적인 선행과 기부 활동 또한 많이 알려져 현재 김연아의 위치는 2000년대 등장한 스포츠 스타 중에서 최고의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인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피겨요정, 국민 여동생 등 온갖 별명을 보유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나이에 주목을 받은 박태환도 취약한 종목에서의 성공 + 잘생긴 외모 덕에 함께 주목을 받고 국민여동생, 국민남동생 소리를 들으며 광고를 같이 찍기도 했습니다.
인기 종목인 축구가 당시 국제대회에서 부진하고 있던 시기라 "축구장에 물 채워서 태환이 수영장으로 쓰고 겨울엔 얼려서 연아 스케이트장으로 써라"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피겨요정을 뛰어넘은 '피겨 여왕'이나 '연느'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당시 그녀의 전국적 인기는 국내의 웬만한 탑급 한류 K 팝스타들도 뛰어넘을 정도였습니다.
실력이 제대로 피어난 2009-10 시즌 때는 김연아가 광고한 제품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자동차, 가전제품(ex.
에어컨), 핸드폰, 화장품, 악세사리, 금융광고 등등)로 광고계를 휩쓸어, 피겨 프로그램 보면서 김연아를 보고, 잠시 광고타임 동안 김연아를 보고, 다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김연아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인기가 신기했는지 외신에서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아닌 락스타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은퇴한 지 오래인 현재까지도 꾸준히 한국 피겨 스케이팅계에 관심을 보이고 기여하는 인물입니다.
국민적 관심도가 김연아를 계기로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것에 더해, 김연아 본인 역시 잠정 은퇴 수준이었던 공백기를 끊고 다시 돌아온 이유도 '한국 피겨계를 위해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서'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연아의 존재로 인해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의 숫자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들이 바로 소위 말하는 '연아 키즈' 세대로, 김연아 시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선수 풀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도 많은 유망주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활동 이외에도 국내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시상자로 나서기도 하고,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홍보하기도 하고, 빙상장 건설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한국 체육계의 빈곤한 환경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녀의 활약 이후로 수많은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들이 생기고 있고, 범국민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또한 그녀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으로 밝힌 컴백 이유 중 하나가 '후배들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피겨계에 금전적 지원 및 여러 가지로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후에 한국 피겨계의 대모라고 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골프계에서의 박세리와 여러모로 위치가 비슷합니다.
2012년 에듀모아에서 초등학생 6,39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48%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 스포츠 역사를 뒤져봐도 국내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운동선수는 손가락에 꼽습니다.
상술했듯 한국에선 생소한 종목인 피겨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천재라는 점,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는 점, 올림픽 피겨 역사상 최악의 편파판정 피해를 당하고도 심판과 러시아를 원망하지 않고 깨끗이 승복했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은퇴한 지금도 전 세대에게서 뜨거운 국민적 사랑을 받고있는 인물이며 여러 레전드 선수들과 더불어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웠던 슈퍼스타 중 한 명이었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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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외
전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도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며 그녀를 통해 피겨의 역사가 다시 쓰인다는 평을 했던 외국 해설의 말처럼 김연아는 엄청난 기술력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살아있는 레전드로 회자됩니다.
신채점제 이후 그야말로 완벽한 교과서를 써내려간 선수이자 기준이 되는 선수로서, 지금이야 웬만한 중상위권 여자선수들이 쇼트에서 70점을 그냥 넘기지만 김연아는 오래도록 깨지지 않던 여자 싱글 쇼트 70점 중반대의 벽을깬 선수입니다.
외신과 전문가 해설진 이전의 역사적인 선수들까지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전무후무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김연아의 연기 스타일에는 북미 쪽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고 아예 김연아가 출전했던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는 그전까지 최대 판매량 2002년의 티켓 판매량 28,664장을 제치고 29,477장을 팔아 최고 판매량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10년 10월 2일과 3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한 아이스 쇼는 1주일 뒤에 미국 방송국 NBC를 통하여 전국에 녹화중계되었습니다.
자국 선수인 에반 라이사첵의 아이스 쇼조차 1년 후에 방송했습니다.
아이스 쇼 표 역시 2일치가 전부 매진되기도 했습니다.
또 NBC 방송을 들어보면 김연아에 대한 언급이 매우 자주 나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 자체가 한국에서 워낙 불모지였던지라 국내에서 주목을 못 받았을 때 아사다 마오의 대항마로서 제일 먼저 김연아에 주목한 것도 일본이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마오의 우승을 가로막는 포지션이 포지션인지라 우호적이진 않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때를 비롯한 시니어가 많은 경기에서 마오가 실력과 멘탈에서도 김연아에게 밀려 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김연아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방송을 들어봐도 김연아를 여왕(조오)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라이벌 구도가 더욱 흥했고, 순정만화 《유리가면》에 빗대어 마야와 아유미로 VS놀이를 하면서 비교떡밥으로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언론보도 및 교양프로그램 등을 통해 마오를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며 또래들과 해맑게 웃으며 행복하게 스케이팅을 하는 타고난 천재"로, 김연아를 "하루 종일 연습만 하면서 친구도 없는 음울한 기계"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도 하며 "예술(예쁘고 밝은)의 마오 vs 기술의 연아"로 구도를 만들었단 의견도 있습니다.
이는 척박한 환경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우뚝 일어선 김연아와,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면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아사다 마오의 환경차이 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미 주니어 시절부터 유명한 선수였고 아사다 마오도 알려진 만큼 가정환경이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드래곤볼의 카카로트와 베지터의 라이벌 구도로 빗대어서 표현하는 경우도 많아진 듯합니다.
그러다 시니어에 올라와서는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와 <종달새의 비상>으로 충격을 안기자, 마오를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기술의 천재", 김연아를 "표현력의 천재"로, "기술의 마오 vs 예술의 연아"로 새로운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의 기술도 만만치 않았고 그게 이후 점수로도 드러나, 2008년까지만 해도 둘의 전적은 아사다 마오가 근소하게 앞섰으나 2009년부터는 김연아가 크게 앞서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바이두의 2010년 스포츠스타 검색어 순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유튜브를 들어가 보면 김연아 응원 댓글 중 중국어로 쓰여 있는 것도 꽤 많이 찾아 볼 수 있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공식 웨이보 계정에는 김연아를 "한국의 피겨 역사를 새로 쓴 왕자(王者)"라고 소개하는 동영상이 올라갔을 정도다.
금메달 수상 이후 자신이 동경하던 미셸 콴과 교류가 많습니다.
콴은 김연아의 아이스 쇼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이후 훈련 장소를 콴의 훈련지인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적이 있으며, 김연아의 새 코치였던 피터 오퍼가드는 콴의 언니인 카렌 콴의 남편이자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페어 동메달리스트다.
미국 내에서 연간 35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 '어린이를 위한 세계연감 2011'의 2010년 판에서는 저스틴 비버, 드류 브리스와 함께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세계적인 할리우드의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와 가수 리한나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연아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 소재를 둔 '여성 스포츠 재단(Women's Sports Foundation)' 에서 주는 '2010 올해의 여성 스포츠선수 상(2010 Sportswoman of the Year)' 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아시아인 여성 운동선수로서는 사상 최초다.
타임스에서 뽑은 '2010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00인' 중 영웅(Heroes) 부문에서 빌 클린턴에 이어 2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선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2번째로 국제구호단체인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UNICEF International Goodwill Ambassador)로 선정되었습니다.
전현직 국제친선대사 중 스포츠스타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요한 올라브 코스(노르웨이),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영국), 조지 웨아(라이베리아),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스위스),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세레나 윌리엄스(미국)가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IOC 공식 페이스북에서는 한국어로 김연아 생일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올렸습니다.
해외 피겨 스케이터 중에서는 그레이시 골드와 리쯔쥔이 김연아의 열성 팬이었습니다.
그 외 김연아가 호스트가 되어 주최한 아이스쇼에 참가했던 선수들 중에서도 관심과 호감을 표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발표하는 프로그램마다 관심을 모으고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선수들이 동작을 따라하는 경우가 잡히기도 합니다.
한국인 최초로 올타임 레전드 클럽에 가입이 되어 마이클 펠프스, 나디아 코마네치 등과 함께 도하 골스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신채점제 이후 그야말로 완벽한 교과서를 써내려간 선수이자 기준이 되는 선수로서, 지금이야 웬만한 중상위권 여자선수들이 쇼트에서 70점을 그냥 넘기지만 김연아는 오래도록 깨지지 않던 여자 싱글 쇼트 70점 중반대의 벽을깬 선수입니다.
외신과 전문가 해설진 이전의 역사적인 선수들까지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전무후무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김연아의 연기 스타일에는 북미 쪽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고 아예 김연아가 출전했던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는 그전까지 최대 판매량 2002년의 티켓 판매량 28,664장을 제치고 29,477장을 팔아 최고 판매량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10년 10월 2일과 3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한 아이스 쇼는 1주일 뒤에 미국 방송국 NBC를 통하여 전국에 녹화중계되었습니다.
자국 선수인 에반 라이사첵의 아이스 쇼조차 1년 후에 방송했습니다.
아이스 쇼 표 역시 2일치가 전부 매진되기도 했습니다.
또 NBC 방송을 들어보면 김연아에 대한 언급이 매우 자주 나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 자체가 한국에서 워낙 불모지였던지라 국내에서 주목을 못 받았을 때 아사다 마오의 대항마로서 제일 먼저 김연아에 주목한 것도 일본이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마오의 우승을 가로막는 포지션이 포지션인지라 우호적이진 않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때를 비롯한 시니어가 많은 경기에서 마오가 실력과 멘탈에서도 김연아에게 밀려 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김연아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방송을 들어봐도 김연아를 여왕(조오)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라이벌 구도가 더욱 흥했고, 순정만화 《유리가면》에 빗대어 마야와 아유미로 VS놀이를 하면서 비교떡밥으로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언론보도 및 교양프로그램 등을 통해 마오를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며 또래들과 해맑게 웃으며 행복하게 스케이팅을 하는 타고난 천재"로, 김연아를 "하루 종일 연습만 하면서 친구도 없는 음울한 기계"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도 하며 "예술(예쁘고 밝은)의 마오 vs 기술의 연아"로 구도를 만들었단 의견도 있습니다.
이는 척박한 환경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우뚝 일어선 김연아와,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면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아사다 마오의 환경차이 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미 주니어 시절부터 유명한 선수였고 아사다 마오도 알려진 만큼 가정환경이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드래곤볼의 카카로트와 베지터의 라이벌 구도로 빗대어서 표현하는 경우도 많아진 듯합니다.
그러다 시니어에 올라와서는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와 <종달새의 비상>으로 충격을 안기자, 마오를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기술의 천재", 김연아를 "표현력의 천재"로, "기술의 마오 vs 예술의 연아"로 새로운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의 기술도 만만치 않았고 그게 이후 점수로도 드러나, 2008년까지만 해도 둘의 전적은 아사다 마오가 근소하게 앞섰으나 2009년부터는 김연아가 크게 앞서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바이두의 2010년 스포츠스타 검색어 순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유튜브를 들어가 보면 김연아 응원 댓글 중 중국어로 쓰여 있는 것도 꽤 많이 찾아 볼 수 있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공식 웨이보 계정에는 김연아를 "한국의 피겨 역사를 새로 쓴 왕자(王者)"라고 소개하는 동영상이 올라갔을 정도다.
금메달 수상 이후 자신이 동경하던 미셸 콴과 교류가 많습니다.
콴은 김연아의 아이스 쇼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이후 훈련 장소를 콴의 훈련지인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적이 있으며, 김연아의 새 코치였던 피터 오퍼가드는 콴의 언니인 카렌 콴의 남편이자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페어 동메달리스트다.
미국 내에서 연간 35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 '어린이를 위한 세계연감 2011'의 2010년 판에서는 저스틴 비버, 드류 브리스와 함께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세계적인 할리우드의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와 가수 리한나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연아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 소재를 둔 '여성 스포츠 재단(Women's Sports Foundation)' 에서 주는 '2010 올해의 여성 스포츠선수 상(2010 Sportswoman of the Year)' 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아시아인 여성 운동선수로서는 사상 최초다.
타임스에서 뽑은 '2010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00인' 중 영웅(Heroes) 부문에서 빌 클린턴에 이어 2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선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2번째로 국제구호단체인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UNICEF International Goodwill Ambassador)로 선정되었습니다.
전현직 국제친선대사 중 스포츠스타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요한 올라브 코스(노르웨이),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영국), 조지 웨아(라이베리아),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스위스),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세레나 윌리엄스(미국)가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IOC 공식 페이스북에서는 한국어로 김연아 생일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올렸습니다.
해외 피겨 스케이터 중에서는 그레이시 골드와 리쯔쥔이 김연아의 열성 팬이었습니다.
그 외 김연아가 호스트가 되어 주최한 아이스쇼에 참가했던 선수들 중에서도 관심과 호감을 표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발표하는 프로그램마다 관심을 모으고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선수들이 동작을 따라하는 경우가 잡히기도 합니다.
한국인 최초로 올타임 레전드 클럽에 가입이 되어 마이클 펠프스, 나디아 코마네치 등과 함께 도하 골스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5. 총평
현역 활동 당시 데뷔부터 은퇴까지 최정점에 있었던 선수로서 세계신기록만 11회 경신한 압도적인 스케이터다.
2009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면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자 미국의 유니버설 스포츠 메인페이지에 "Long live the Queen!"이라는 문구가 김연아의 사진과 함께 크게 실리는가 하면, AP통신은 "경쟁이기보다는 즉위식에 가까웠다"고 전했습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프리 스케이팅 경기를 마치자 미국 NBC 방송의 해설진 가운데 한 명이었던 톰 해먼드 캐스터가 "Long li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이라고 외치며 찬탄했습니다.
이 말은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김연아의 선수 생활을 관통하는 짧고도 임팩트 있는 한마디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출전했던 모든 국내외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었던 일명 올포디움의 소유자이며, 쇼트와 프리 중 하나는 반드시 '1위'를 차지했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2006-07 시즌 이후부터 2013-14 시즌까지 그야말로 10여년 간 피겨계를 지배하고 군림했던 전설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전 시대 피겨계를 장악했던 전설들에게도 극찬을 받았으며,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기술성, 피지컬과 예술성, 멘탈까지 약점이 없는 토탈 패키지로서 피겨 스케이팅에서 소위 4대 주요 국제대회라고 불리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사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을 모두 제패했습니다.
4개의 메이저 대회가 생긴 이후 이 대회들을 모두 제패한 여자 싱글 선수로는 김연아가 최초다.
세계신기록만 11회를 세우면서 여자 싱글 선수 최초로 200, 210, 220점대를 돌파했고 경쟁 선수들을 20점 이상의 점수 차 로 따돌리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경이로운 실력을 갖춘 덕에 타국에서조차 최고의 선수로 대접받았었습니다.
부상을 극복하고 한창 날아다니던 2009년과 그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타 현역 탑싱들을 제외하고 미셸 콴, 카타리나 비트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비견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만큼 동시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 중에서는 독보적 위치에 속하며, 시대를 풍미한 스케이터로 평가받습니다.
출전하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휩쓸며, 빙판 위를 쓸어버리는 진정한 여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출전해서 경기를 했다 하면, 대부분의 대회에서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아내고 신기록 작성까지 해주며 그야말로 피겨계를 주름잡던 여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해외의 유명 스포츠 언론이나 해설진들은 그녀가 시니어 데뷔를 하고 은퇴하던 시즌까지의 대부분의 국제대회를 김연아가 참가하는 대회 or 김연아가 참가하지 않는 대회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전까지는 출전도 잘 못한 나라에서 어디서 이런 거물이 튀어나왔냐'고 신기하게 여기는 말이 나옵니다.
김연아가 은퇴한 이후 국제대회에서는 김연아 키즈가 나올 때마다 '김연아가 이끌고 온', 또는 '물꼬를 튼' 선수라고 언급됩니다.
현재는 많은 한국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토대가 탄탄해졌습니다.
김연아가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해외 해설은 항상 김연아를 언급합니다.
.
2009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면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자 미국의 유니버설 스포츠 메인페이지에 "Long live the Queen!"이라는 문구가 김연아의 사진과 함께 크게 실리는가 하면, AP통신은 "경쟁이기보다는 즉위식에 가까웠다"고 전했습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프리 스케이팅 경기를 마치자 미국 NBC 방송의 해설진 가운데 한 명이었던 톰 해먼드 캐스터가 "Long li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이라고 외치며 찬탄했습니다.
이 말은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김연아의 선수 생활을 관통하는 짧고도 임팩트 있는 한마디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출전했던 모든 국내외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었던 일명 올포디움의 소유자이며, 쇼트와 프리 중 하나는 반드시 '1위'를 차지했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2006-07 시즌 이후부터 2013-14 시즌까지 그야말로 10여년 간 피겨계를 지배하고 군림했던 전설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전 시대 피겨계를 장악했던 전설들에게도 극찬을 받았으며,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기술성, 피지컬과 예술성, 멘탈까지 약점이 없는 토탈 패키지로서 피겨 스케이팅에서 소위 4대 주요 국제대회라고 불리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사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을 모두 제패했습니다.
4개의 메이저 대회가 생긴 이후 이 대회들을 모두 제패한 여자 싱글 선수로는 김연아가 최초다.
세계신기록만 11회를 세우면서 여자 싱글 선수 최초로 200, 210, 220점대를 돌파했고 경쟁 선수들을 20점 이상의 점수 차 로 따돌리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경이로운 실력을 갖춘 덕에 타국에서조차 최고의 선수로 대접받았었습니다.
부상을 극복하고 한창 날아다니던 2009년과 그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타 현역 탑싱들을 제외하고 미셸 콴, 카타리나 비트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비견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만큼 동시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 중에서는 독보적 위치에 속하며, 시대를 풍미한 스케이터로 평가받습니다.
출전하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휩쓸며, 빙판 위를 쓸어버리는 진정한 여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출전해서 경기를 했다 하면, 대부분의 대회에서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아내고 신기록 작성까지 해주며 그야말로 피겨계를 주름잡던 여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해외의 유명 스포츠 언론이나 해설진들은 그녀가 시니어 데뷔를 하고 은퇴하던 시즌까지의 대부분의 국제대회를 김연아가 참가하는 대회 or 김연아가 참가하지 않는 대회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전까지는 출전도 잘 못한 나라에서 어디서 이런 거물이 튀어나왔냐'고 신기하게 여기는 말이 나옵니다.
김연아가 은퇴한 이후 국제대회에서는 김연아 키즈가 나올 때마다 '김연아가 이끌고 온', 또는 '물꼬를 튼' 선수라고 언급됩니다.
현재는 많은 한국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토대가 탄탄해졌습니다.
김연아가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해외 해설은 항상 김연아를 언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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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부
김연아의 역대 기부 행적과 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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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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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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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꿈나무들에게 1천 2백만 원의 장학금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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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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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꿈나무 김현정 선수에게 LG생활건강 광고모델 수익금의 일부인 장학금 1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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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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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클럽 CF 출연료 중 1억 원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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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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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시름에 잠긴 태안 지역 학생들에게 2천만 원 상당의 교복 100여 벌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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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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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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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ishin Investment Forum 2008 행사에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피겨 꿈나무 선수를 후원하기 위한 5천만 원 상당의 기부금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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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유업과 협의하여 4천만 원 상당의 유제품을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1년간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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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원 상당의 교복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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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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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인형 1,000여 개를 김연아 선수가 직접 선정한 곳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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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꿈나무 일일클리닉 행사를 마친 후 '피겨 꿈나무 장학금 전달식' 을 갖고 적립된 행복기부금을 유망주 1인당 5백만 원씩 총 5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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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가정의 자녀 중 2009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에게 1억 원 상당의 동절기 교복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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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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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쇼 Angels on ice를 개최. 공연 수익금 약 1억 4천만 원을 소아암 등 희귀병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전액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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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김현정 선수 해외 전지훈련 비용 3천만 원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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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가 책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인세 불우이웃 돕기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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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클럽 출연료 1억 + 아이비클럽 측 1억, 총 2억 상당의 금액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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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주변환경에도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키워나가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매년 1인당 수천만 원을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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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키우라' 는 의미로 김연아의 의상 등을 무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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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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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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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성남종합사회복지관에 소년소녀 가장들을 지원하기 위해 1억 원 상당의 유제품을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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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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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4층 강당에서 강정원 행장과 함께 만든 '아우인형' 과 후원금을 유니세프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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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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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에스티나 김연아 컬렉션 수익금 10%를 굿네이버스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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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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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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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에 1억 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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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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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피격 사건 희생자 위로 성금 5천만 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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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식 개선 라디오 출연료 4천만 원 전액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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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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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하우젠 제로 피겨꿈나무 지원 2천만 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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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사랑적금 백혈병 어린이 후원금 1억 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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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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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동포 후원재단 '자랑스런 한국인상' 상금 1만달러를 유니세프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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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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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연아 사랑나눔 기프트카드'의 판매 수익금으로 조성한 기부금 2천 6백여만 원을 난치병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소원 성취를 위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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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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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장들에게 5천만 원의 후원금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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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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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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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세계선수권 2위 상금 2만 7,000달러(한화 약 2,920만 원)를 유니세프에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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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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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바보의 나눔'에 1천만 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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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다문화가정 어린이 후원금 1천만 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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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유릭(Peter Jurik)이 그린 초상화의 로열티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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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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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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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아이유와 함께 발매한 '얼음꽃’ 음원수익을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팀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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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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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 5명에게 후원금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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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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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피겨퀸 연아사랑 적금'으로 조성된 기부금 1억 원을 한국 백혈병 어린이재단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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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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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학교 건립을 위해 가톨릭 살레시오 수도회에 7천만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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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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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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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난치병 어린이 5명에게 후원금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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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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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2013 세계선수권 우승 상금 전액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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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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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하이옌 피해를 입은 필리핀의 구호기금으로 유니세프에 10만 달러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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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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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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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1억 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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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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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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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피해를 입은 네팔 어린들의 구호기금으로 유니세프에 10만 달러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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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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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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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공식 팬카페에서 그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지 6주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지 2주년을 기념하여 유니세프에 기부를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하던 중 조용히 나타나 5천만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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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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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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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지목을 받아 승일희망재단에 루게릭 요양병원 건설 기금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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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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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열린 아이스 쇼 레볼루션 온 아이스의 출연료 전액을 아프리카 사이클론 피해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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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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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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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천만 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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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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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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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공식 팬카페에서 그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지 10주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지 6주년을 기념하여 유니세프에 기부를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 중 5천만 원을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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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인해 고통 받는 대구, 경북 지역을 위해 5천만 원을 추가로 기부하여 팬들과 함께 모금한 기부액 1억 850만 원 전체를 유니세프 대신 경상북도 권역 치료기관인 경북대학교 병원에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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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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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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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백신 공급을 위해유니세프를 통해 10만 달러(한화 약 1억 1000만 원)을 코백스 퍼실리티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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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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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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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역 복구에 재해 성금 1억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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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보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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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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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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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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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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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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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per's BAZAAR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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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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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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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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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패션지)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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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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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잡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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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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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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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루어 코리아 로고 | |||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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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잡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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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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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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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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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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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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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잡지)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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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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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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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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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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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per's BAZAAR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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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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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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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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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잡지) | |||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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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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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패션지) |
1 2 3 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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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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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드 코리아 로고 |
1 2 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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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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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per's BAZAAR | |||
COSMOPOLITAN(잡지)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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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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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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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
보그(패션지) |
기사 사진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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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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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드 코리아 로고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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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
ELLE(잡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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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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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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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패션지) | |||
9월호
|
ELLE(잡지)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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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방송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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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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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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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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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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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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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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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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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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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6일,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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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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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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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2일 ~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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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
|
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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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2일
|
MBC |
무한도전
|
게스트
|
9. 음반
발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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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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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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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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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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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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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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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만약에 |
만약에
|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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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타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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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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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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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s/201006/01/0... |
Smile Boy(Rock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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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김연아
|
KB 금융그룹 CM송
Smile Boy |
12월 8일
|
슈퍼걸(김연아) |
Super Girl
|
김연아, 씨스타, 일렉트로보이즈
|
슈퍼 걸
|
20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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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
꿈의 겨울 |
꿈의 겨울
|
김연아, 박정현
|
꿈의 겨울
|
6월 21일
|
attachment/iu yo... |
얼음꽃
|
김연아, 아이유
|
얼음꽃
|
2019년
|
||||
2월 26일
|
민국 앨범 |
3456
|
김연아, 하현우
|
민국 (民國, 100th Anniversary)
|
2월 27일
|
대한이 살았다 |
대한이 살았다
|
김연아, 박정현, 정재일
|
대한이 살았다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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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0일
|
Move Like This |
Move Like This
(Feat. 김연아) |
김연아, 강다니엘, 안유진
|
Move Like This
|
10. 도서
발매일
|
표지
|
제목
|
출판사
|
비고
|
2010. 01. 30.
|
김연아의 7분 드라마 |
김연아의 7분 드라마 : 스무 살 김연아 그 열정과 도전의 기록
|
중앙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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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야기들
- 건강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발이 심하게 혹사 당해 하이힐을 신는 게 어려울 정도다. 또한 각종 근육 질환에 시달리면서, 말 그대로 온 몸 중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은퇴한 이후 2~3년 동안은 선수 시절 혹사시킨 몸을 치료하는 데에 전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목을 불문하고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온몸에 부상을 달고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친 종목들은 탈골, 골절, 인대 파열 등등 그냥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수준이 많습니다. 수술이나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되는 부상들은 은퇴 후로 미루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역 시절에는 간단한 진통제나 교정으로 악화되지 않게만 관리 받습니다. 은퇴 후 한 인터뷰에서, 걱정하는 것만큼 크게 건강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고 합니다. 과장되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게 많다고 합니다.
- 얼굴이 매우 작고 팔다리가 길기 때문에 비율이 좋아, 키에 비해서 훨씬 더 커 보입니다. 하이힐까지 신으면 웬만한 연예인들 옆에서는 꿀리지 않습니다. 키 자체도 한국 여성 평균 신장보다 큽니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한 달 전쯤 발에 부상이 있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말했습니다. 그간 부상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경험이 쌓여 훈련을 아예 쉬고 올림픽 2주 전쯤에 회복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여담으로 올림픽을 한 달 정도 남기고 2010 사대륙선수권에서 우승한 아사다 마오가 본인의 올림픽 우승 확률이 80%라고 자국 내 언론매체와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 좋아하는 영화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500일의 썸머, 리멤버미, 물랑 루즈다.
-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더 시크릿입니다.
- 향이 강한 음식을 싫어합니다. 고수와 민트초코도 싫어하며 마라탕도 취향이 아닐 것 같아서 먹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 여행했던 곳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한 곳은 파리라고 했는데, 가고 싶은 여행지도 프랑스라고 합니다.
- 노래를 잘 부르고 가창력도 꽤 좋은 편입니다. 방송이나 팬미팅에서 웬만한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는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 중저음이 풍부하고 고음역도 잘 넘깁니다.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실력입니다. 이승기, 빅뱅의 응원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더니, 가수 아이유와 듀엣곡으로 부른 <얼음꽃>은 아예 정식 음원 발표까지 되었습니다. 음원 수익금 전액은 꿈나무 선수들에게 기부했습니다. 또한 CF 중 본인이 부른 노래가 들어간 것도 있습니다. 2014년에는 가수 박정현과 ‘꿈의 겨울’이라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곡을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 2008년 12월에는 대회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에 산타복으로 원더걸스의 Nobody에 맞춰 댄스를 추며 태연의 <들리나요>를 불러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노래 부르는 영상을 미국 NBC에서 가져다 경기 직전에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 투명테이프로 스케이트화를 감아 신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화제가 되었습니다. 김연아는 1~2주 만에 발목이 무너진 스케이트를 테이프를 감아가며 1달을 신었다고 했습니다. 심하면 2일밖에 못 신고 새 스케이트로 교체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유독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 발목이 잘 무너졌던 이유는, 높고 강한 점프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거기다가 열악한 지원 때문에 전용 빙상장도 아니고 일반인이 많은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 훈련했습니다. 무명 시절도 아니고 김연아가 국제대회에서 많은 상을 타서 인지도가 높을 때였습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와서 소리지르고 구경하는 데 연습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때 김연아는 고관절 부상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으며 훈련을 하고 경기에 참여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김연아는 이후 2010년 2월에 출간된 자서전인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서 이 일을 언급하며 '내가 이러고 있을 때 다른 선수들은 훈련장에서 편하게 훈련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복받쳤다'고 밝혔습니다.
- 국내에서 연습한 곳 중 롯데월드 링크 빙질이 좋았다는 얘길 하였는데, 그 이유는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난방조차 제대로 안 되는 국내 링크장의 사정을 보여주는 웃픈 이야기입니다. 사실 실내 유원지 안이라 얼음 위에 물이 한 겹 덮힐 만큼 녹아 있는 롯데월드 링크 상황을 안다면 의아한 얘기인데, 선수들이 연습하는 건 영업이 끝나고 밤 12시부터 새벽이기 때문입니다. 녹았던 빙판이 다시 얼어붙어 있고 온기는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은 현재도 일반인 공개 영업을 안 하는 연습 전용 링크장이 거의 없는(한국체육대학교 교내 링크장) 형편상 별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 은퇴 당시 25세(만 23세)여서 너무 일찍 은퇴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 정도면 피겨 스케이팅(여자 싱글)에서는 선수 생활을 오래한 편에 속합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리듬체조와 더불어 신체 변화의 영향이 큰 종목이기 때문에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가 선수 생활의 전성기입니다. 20대 초반부터는 쇠락기일 정도로 선수 생명이 짧은 운동 종목입니다.
- 김연아 박물관 건립 문제로 부천시(출생지)와 군포시(성장지)가 김연아의 고향 지분을 두고 서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 군포시 군포소방서 건너편 철쭉 동산 인공 폭포 옆에 시에서 만든 김연아 비스무리하게 생긴 피겨 스케이터 동상이 있습니다. "기둥의 동그라미는 빙판을 형상화한 것이고 김연아의 올림픽 제패를 기념하는 동상"이라고 기단 명패에 박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안 닮았지만 김연아가 모델인 건 확실하고, 동상 자체도 조악한 느낌입니다. 시에서 이를 무단으로 김연아의 이름을 붙여 홍보해 논란이 인 바 있습니다. 심지어 기념 동상 건립을 둘러싼 비리 혐의까지 있으며, 김연아 측에 약속했던 빙상장 건립은 안 해 주고 김연아 거리 조성이라든지 다른 사업까지도 무단으로 추진해 김연아 측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2011년에 군포시의 당시 모 시의원이 "솔직히 이제는 김연아라는 이름 자체가 싫다. 김연아가 군포시에 해 준 게 뭐가 있냐?"며 적반하장, 막말을 한 일로 구설수에 오른 일도 있었습니다. 김연아가 군포시를 떠난 데는 이런 여러 가지가 이유가 되었을 듯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 2017년까지도 김연아가 10년째 군포시 홍보대사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2007년 지정된 이후 시내에 여기저기 붙어 있던 홍보대사 간판과 금정역 담장에 있던 얼굴 사진 등은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며 따로 홍보대사라고 선전하지도 않고 있지만, 군포시청에는 홍보 대사 액자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김연아 이후에 홍보대사로 지정된 인물도 없고, 시에도 그대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군포시에서는 "본인의 의사가 없으면 위촉을 해지하지는 않습니다."고 밝혔습니다. 김연아가 군포시를 떠난 지 오래 되었으므로 당연히 의미는 없습니다.
- 2011년 12월 TV조선 개국 기념 김연아가 9시 뉴스 '날'에서 1일 앵커로 출연한다고 조선일보에서 홍보하여 공지영 등 진보적 인사, 누리꾼과 김연아 안티들의 설전이 있었으나 실제 방송분은 스튜디오에서 이뤄진 인터뷰성 출연으로 밝혀졌습니다.
- 과거에 혐한초딩 문서에 나와 있었는데, 한 혐한초딩이 "김연아보다 아사다 마오가 더 예쁘다"고 했다가 같은 혐한초딩한테 "그건 너무 갔다"라고 까였다는 도시전설이 있습니다.
- 2014년 3월 아이스하키 선수 김원중과의 열애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해당 년도 11월에 결별 기사가 나왔습니다.
- 2014년 3월에 승마협회 회장에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취임하고 7개월 뒤에 승마협회에서 ‘중장기 로드맵’ 보고서를 냈는데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로드맵은 정유라의 2020 도쿄 올림픽 메달 획득을 겨냥해 만들어진 것으로 내용 중에 “승마의 국민적인 우상(예: 골프 박세리, 피겨 김연아) 탄생에 적극 후원하여 국내 승마산업 대중화 및 국산 승용마의 해외 수출 계기 마련”이라고 밝혔습니다. 애초 "승마의 국민적 우상 탄생에 적극 후원한다"는 보고서에서 ‘메인 후원사 선정(안)’ 항목에 장애물과 종합마술 등 다른 종목과 달리 마장마술 분야에 대해서만 “승마협회의 회장사인 삼성에 후원을 요청”이라고 못박았다는 점에서 보고서의 '승마의 국민적 우상'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답이 나오는데, 언론에서는 이 보고서를 두고 "최순실과 삼성은 정유라를 '승마계의 김연아', '제2의 김연아'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는 표제로 비틀어 기사를 냈습니다. TV조선의 강적들 163화에도 이 일이 소개되었습니다.
- 신 도라에몽 스페셜 1화 "너와 나의 아이스 쇼" 에피소드에서 아사다 마오가 YUNA로 로컬라이징 되었습니다.
- 2018년, 박근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극우 세력의 타겟이 되었습니다. 위의 'ANOC 아웃스탠딩 퍼포먼스상' 수상 관련 영상기사의 댓글들이나 기타 최근의 조회수 많은 김연아 기사들의 댓글 란에는 어김없이 극우성향으로 추정되는 특정 닉들이 장시간 상주하면서 김연아에 대한 입에 담기도 힘든 극단적인 명예훼손-인신공격을 계속 가했었습니다. 예전 박근혜의 손을 뿌리치는 듯한 영상이 진짜인지 아닌지 논란이 된 이후로 박근혜 극단 추종자들의 공격 대상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 2022년 포레스텔라의 고우림과 열애 및 10월 결혼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2018년 아이스쇼에서 만난 후 3년간 연애했다고 합니다.
12. 영향력
- 다양한 분야에서 헌정을 받고 있습니다. 나이키에서 다이아몬드와 금이 들어간 골든 자켓을 헌정받았습니다. 루이비통에선 트렁크를 헌정받았습니다. 트렁크는 2개가 만들어져 하나는 경매에 올라 그 수익금이 기부에 쓰였습니다. 미국에선 김연아를 위한 헌정시를 쓴 시인과, 김연아가 제목인 교향곡을 만든 작곡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팬의 헌정노래도 있습니다.
- 쿠키런에서 그녀를 모티브로 한 피겨여왕맛 쿠키가 있습니다.
- NDS 게임인 <빙글빙글 프린세스 -노려라 밴쿠버->의 캐릭터 '김소연'의 모델입니다.
- 2014년에 출간된 다산북스의 학습만화 Who? 시리즈의 한국사 위인전에 등재되었습니다. 초판에는 뒷면에 카롤리나 코스트너의 사진이 잘못 실려 있어서 책을 산 구매자, 독자들과 김연아 팬들의 항의를 받았고 이후 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김연아의 일러스트로 교체되었습니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착용했던 스케이트를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 2017년 3월 16일 네이버 스포츠 칼럼에 피겨 스케이팅 레전드 부문으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 한때 네이버 도전만화에 그녀를 소재로 했던 명탐정 코난의 팬픽인 <코난과 키드와 서울의 별>이 연재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저작권 침해 우려로 인해 삭제되었습니다.
13. 별명
- 빵순이, 빵연아: 빵을 좋아한다는 이미지가 강하여 붙은 별명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빵과 관련된 사진이 의도치 않게 많이 찍혀 그렇게 별명이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팬미팅 등의 이벤트 때 소품이나 선물로 빵 종류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 연느님: 약칭인 연느로도 많이 지칭합니다. 유느님, 치느님과 꼭 함께 등장하는 별명이기도 합니다.
- 퀸연아(Queen Yuna):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연느님'과 '퀸연아' 둘 다 오글거려서 싫지만 연느님이 조금 더 낫다고 합니다.
- 피겨 요정 - 피겨 여왕: 2008-09 시즌을 기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팬미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둘 다 오글거리는데 자기는 항마력이 딸려서 싫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피겨 여왕은 국제적인 별명이라 본인이 싫어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개요에 보듯이 해외 방송에서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대관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구글에서 Yuna Queen를 검색하면 김연아로 연동되며, 방송 중계나 신문 등 외신에서 김연아에 대해 '퀸'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고, 심지어 일본 방송에서조차 김연아를 여왕의 일본식 발음인 '조오(女王)'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직후 구글에서 김연아를 검색할 경우 Yuna Kim 대신 Yuna Queen으로 표제어가 출력되었습니다.
14. 가족
김현석과 박미희의 차녀로, 3살 위의 언니 김애라(간호사)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전직 사업가로, 훈련비를 포함한 금전적인 지원을 하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습니다.
한때 일부 안티들이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날조된 정보를 퍼뜨렸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저서인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에 따르면 큰딸 김애라도 노래에 재능이 있어서 음악 전공을 희망했으나 두 딸을 모두 지원할 여유가 없었고, 박미희 자신 또한 큰딸이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에 설득해서 음악 전공을 포기하게 했다고 합니다.
같은 책에 따르면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같이 노래방에 갔다가 진짜로 재능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음악을 전공할 것을 설득했지만 이미 김애라는 간호학과로 진로를 결정한 뒤였습니다.
같은 책에서 박미희는 큰딸의 진로를 바꾸게 한 일을 후회하며 미안함을 밝혔고 김연아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방송에서 언급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래도 박미희는 작은딸 김연아에게 올인하느라 큰딸 김애라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기에, 큰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1년 내내 담임 교사를 만난 적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큰딸의 졸업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임 교사를 한번 본 게 전부라고 합니다.
김연아의 가족이 군포시에서 여의도동으로 이사를 간 적이 있는데, 당시 언니 김애라가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물론, 그 외에도 김연아의 잦은 해외 출장과 연습장 이용 편의성, 방송국 출연 등을 고려한 것입니다.
참고로 김애라는 2014년에 결혼한 이후 간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아버지는 전직 사업가로, 훈련비를 포함한 금전적인 지원을 하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습니다.
한때 일부 안티들이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날조된 정보를 퍼뜨렸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저서인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에 따르면 큰딸 김애라도 노래에 재능이 있어서 음악 전공을 희망했으나 두 딸을 모두 지원할 여유가 없었고, 박미희 자신 또한 큰딸이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에 설득해서 음악 전공을 포기하게 했다고 합니다.
같은 책에 따르면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같이 노래방에 갔다가 진짜로 재능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음악을 전공할 것을 설득했지만 이미 김애라는 간호학과로 진로를 결정한 뒤였습니다.
같은 책에서 박미희는 큰딸의 진로를 바꾸게 한 일을 후회하며 미안함을 밝혔고 김연아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방송에서 언급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래도 박미희는 작은딸 김연아에게 올인하느라 큰딸 김애라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기에, 큰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1년 내내 담임 교사를 만난 적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큰딸의 졸업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임 교사를 한번 본 게 전부라고 합니다.
김연아의 가족이 군포시에서 여의도동으로 이사를 간 적이 있는데, 당시 언니 김애라가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물론, 그 외에도 김연아의 잦은 해외 출장과 연습장 이용 편의성, 방송국 출연 등을 고려한 것입니다.
참고로 김애라는 2014년에 결혼한 이후 간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15. 사건 사고
- 2010년 8월 24일 김연아 측에서 3년간 같이 했던 코치 브라이언 오서와의 계약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양측의 신경전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연아 브라이언 오서 결별 사건 문서 참조.
- 2021년 2월 9일에 보도된 경기신문 기사에 의하면, 위키피디아 중국어판에서 일부 혐한 중국 네티즌들이 악의적으로 김연아 선수의 사진을 대표 사진으로 걸어놓고 한국인 전체를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본토) 국적의 소수 민족을 의미하는 조선족이라고 적어두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위키피디아 중문판 조선족 페이지에서 설명하는 조선족은 한민족을 가리키는 의미의 일종의 번역어라는 조선족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족은 조선민족(한민족)을 의미하며,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본토) 국적의 소수민족을 의미하는 조선족을 보고 싶으면 중국조선족이란 제목의 페이지에서 확인하라는 문구가 해당 문서 상단에 위치해 있다는 억지다. 다만 백과사전 상단에는 조선민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페이지의 명칭은 조선족이라고 해놓았으며, 일본의 민족은 야마토족(大和族·대화족)이 아니고 야마토민족(大和民族·대화민족)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여기서 진짜 문제점은 한국의 한민족(조선민족)은 한자 민(民)을 제거하고 조선족이라고 적어놓는 이중성입니다. 한국인을 중국인 안의 소수민족으로 편입된 것처럼 적고 싶은 의도가 보이는 부분입니다. 중국에서도 중국 정부 등에서 사용하는 제대로된 호칭은 중국조선족(中国朝鲜族)이 아니고 8천만 한민족(조선민족·朝鲜民族)의 일부분인 200만 조선족 집단은 조선족(朝鲜族)이 정식 명칭입니다. 조선족은 조선민족(한민족)의 줄임말이 아닙니다. 한국인을 조선족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으며, 한민족이나 조선민족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한국인, 북한인, 조선족 모두 한민족(조선민족)의 일원이지만, 한국인을 조선민족이 아닌 조선족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논점을 흐리지 말고 문제 제기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한 단어 차이로 의미가 꽤 다르기 때문입니다.
- 카밀라 발리예바 도핑 적발 사건에 대해 올린 글에 발리예바의 러시아 팬들이 15살한테 질투하냐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며 악플 테러를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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