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기자맨의 최근 생활뉴우스
김민종
김민종
金旻鍾 | Kim Min Jong |
|
출생
|
1972년 3월 23일 (50세)
|
서울특별시 성동구
(現 서울특별시 강남구) |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경주 김씨
|
신체
|
179cm, O형
|
직업
|
배우, 가수, SM 엔터테인먼트 이사
|
가족
|
2남 2녀 중 넷째
|
학력
|
서울대왕초등학교 (졸업)
수유중학교 (졸업)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과 / 전문학사) |
종교
|
불교(법명: 법진)
|
소속사
|
SM엔터테인먼트
|
데뷔
|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
1. 소개
대한민국의 배우 겸 가수.
배우와 가수 양쪽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 90년대를 대표했던 멀티 엔터테이너로, 대표적인 톱스타였습니다.
안양예고-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
배우와 가수 양쪽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 90년대를 대표했던 멀티 엔터테이너로, 대표적인 톱스타였습니다.
안양예고-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
2. 연기 활동
정식 데뷔 전에는 광고모델로 업계에 얼굴도장을 찍다가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로 데뷔했고,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처음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가수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는데, 드라마만 나왔다 하면 히트를 쳐서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라고 불렸습니다.
<느낌>, <머나먼 나라>, <미스터Q>, <수호천사> 등의 숱한 드라마에서 당대 최고의 미녀 스타들과 호흡을 맞춰 드라마를 대히트시키고 OST까지 직접 불러 대히트시켰습니다.
특히 김희선과는 <머나먼 나라>, <웨딩드레스>, <미스터Q> 세 작품에서 주연으로 만나 커플로서 찰떡궁합 콤비를 과시하여 90년대 드라마 남녀 캐스팅 1순위였습니다.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여러 하이틴 스타들 군단의 일원으로 톱가수로서의 인기까지 더해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톱배우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지금은 결혼한 배우 이승연과 6년 넘게 공개 열애를 하며 1990년대 대표적인 톱스타 커플이었으나 2001년에 결별했습니다.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 쪽으로는 영 풀리지 않았는데, 데뷔 초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나름 성공하고 인지도를 쌓아가다인기 스타가 된 이후 찍은 영화 <귀천도>로 일약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찍은 영화는 줄줄이 망하면서 작품 운이 정말 없음을 증명하였습니다.
박찬욱 초기작인 <3인조>는 그렇다 쳐도, 제목부터가 '이거 뭥미?' 소리가 나오는 <마지막 방위>와 <홀리데이 인 서울>은 왕가위 영화 기법 표절작이라고 흥행과 같이 평도 망했고, 이후로 나오는 <이것이 법이다>, <패밀리>, <나비>, <낭만자객> 등 줄줄이 흥행에서 연속 재앙이었습니다.
빨이 안 받고 흥행참패라는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진지한 정극 연기인 <나비>와 망가지는 연기도 불사하고 찍은 <낭만자객>을 연달아 찍었으며, 특히 <나비>의 경우는 흥행에 실패하면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희대의 영화 <낭만자객>에서 관객에게 큰 충격을 먹이고 그 뒤엔 충무로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는지 영화계에서는 제작자, 감독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단 <나비> 같은 경우는 본인도 매우 진지하게 작품에 임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갱스 오브 뉴욕, 무간도, 선생 김봉두, 매트릭스 리로디드, 엑스맨2,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살인의 추억이었습니다.
지지리 운이 없었던 것입니다.
힐링캠프 김민종 편에서 김민종이 직접 밝혔듯이 영화 <낭만자객>이 자신의 연기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와 음반에서는 항상 히트를 시키며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나 영화에서 항상 실패를 해온 김민종은 당시 하이틴 스타의 틀을 벗어나 영화배우로서의 성공이 절실했습니다.
특히 영화배우가 몸값과 위상에서 드라마 배우를 추월해가던 2000년대 초반의 시기에 만약 낭만자객이 흥행을 하면 하이틴 스타가 아닌 제대로 된 배우로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실패를 한다면 과거의 하이틴 스타로만 남고 배우로서의 클래스가 추락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낭만자객은 전국 관객 90만 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혹평을 받았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동안 터프가이 이미지에 눈에 힘주고 멋있는 캐릭터만 연기하던 김민종 또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하여 이미지를 구기고 2000년대 현빈, 소지섭, 강동원 등의 새로운 배우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그 후 김민종의 연기 커리어는 쭉 하락세를 걸었습니다.
2003년 KBS 주말 드라마 진주 목걸이, 2004년 SBS 수목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 2005년 MBC 수목 드라마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에서 주연을 맡아 드라마 커리어는 이어갔지만 90년대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란 말이 무색하게 시청률이 좋지 않았습니다.
2006년 tvN 개국기념 미니시리즈 <하이에나> 를 끝으로 원톱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2008년 MBC 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 2009년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2011년 SBS 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 등을 거치며 주연의 자리에서 확실히 내려오게 되었고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해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러다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복귀.
팬들의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완벽한 연기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미중년 컨셉으로 다시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자신이 '신사의 품격'에서 맡은 최윤 변호사 역을 그대로 활용하여 차관우를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웃하려 제의를 하는 선배 변호사로 등장.
또한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성동일'과 인연을 맺은 자신의 캐릭터 '김민종'으로 분하여 2002년 나정의 결혼식 때 삼천포와 같이 축가 '너만을 느끼며'를 불렀습니다.
2015년에는 SBS 드라마 미세스 캅을 2016년에는 시리즈편인 미세스 캅 2에서 박종호 역할로 출연합니다.
2017년, MBC 월화특별기획 투깝스에 조항준 역으로 특별출연.
또한 12월에 개봉한 신과 함께 죄와 벌에도 우정 출연하여 과거 인기 스타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SBS 드라마 배가본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윤한기 역할로 출연했는데,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에 이어 두 번째 악역을 맡았습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가수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는데, 드라마만 나왔다 하면 히트를 쳐서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라고 불렸습니다.
<느낌>, <머나먼 나라>, <미스터Q>, <수호천사> 등의 숱한 드라마에서 당대 최고의 미녀 스타들과 호흡을 맞춰 드라마를 대히트시키고 OST까지 직접 불러 대히트시켰습니다.
특히 김희선과는 <머나먼 나라>, <웨딩드레스>, <미스터Q> 세 작품에서 주연으로 만나 커플로서 찰떡궁합 콤비를 과시하여 90년대 드라마 남녀 캐스팅 1순위였습니다.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여러 하이틴 스타들 군단의 일원으로 톱가수로서의 인기까지 더해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톱배우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지금은 결혼한 배우 이승연과 6년 넘게 공개 열애를 하며 1990년대 대표적인 톱스타 커플이었으나 2001년에 결별했습니다.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 쪽으로는 영 풀리지 않았는데, 데뷔 초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나름 성공하고 인지도를 쌓아가다인기 스타가 된 이후 찍은 영화 <귀천도>로 일약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찍은 영화는 줄줄이 망하면서 작품 운이 정말 없음을 증명하였습니다.
박찬욱 초기작인 <3인조>는 그렇다 쳐도, 제목부터가 '이거 뭥미?' 소리가 나오는 <마지막 방위>와 <홀리데이 인 서울>은 왕가위 영화 기법 표절작이라고 흥행과 같이 평도 망했고, 이후로 나오는 <이것이 법이다>, <패밀리>, <나비>, <낭만자객> 등 줄줄이 흥행에서 연속 재앙이었습니다.
빨이 안 받고 흥행참패라는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진지한 정극 연기인 <나비>와 망가지는 연기도 불사하고 찍은 <낭만자객>을 연달아 찍었으며, 특히 <나비>의 경우는 흥행에 실패하면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희대의 영화 <낭만자객>에서 관객에게 큰 충격을 먹이고 그 뒤엔 충무로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는지 영화계에서는 제작자, 감독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단 <나비> 같은 경우는 본인도 매우 진지하게 작품에 임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갱스 오브 뉴욕, 무간도, 선생 김봉두, 매트릭스 리로디드, 엑스맨2,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살인의 추억이었습니다.
지지리 운이 없었던 것입니다.
힐링캠프 김민종 편에서 김민종이 직접 밝혔듯이 영화 <낭만자객>이 자신의 연기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와 음반에서는 항상 히트를 시키며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나 영화에서 항상 실패를 해온 김민종은 당시 하이틴 스타의 틀을 벗어나 영화배우로서의 성공이 절실했습니다.
특히 영화배우가 몸값과 위상에서 드라마 배우를 추월해가던 2000년대 초반의 시기에 만약 낭만자객이 흥행을 하면 하이틴 스타가 아닌 제대로 된 배우로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실패를 한다면 과거의 하이틴 스타로만 남고 배우로서의 클래스가 추락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낭만자객은 전국 관객 90만 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혹평을 받았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동안 터프가이 이미지에 눈에 힘주고 멋있는 캐릭터만 연기하던 김민종 또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하여 이미지를 구기고 2000년대 현빈, 소지섭, 강동원 등의 새로운 배우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그 후 김민종의 연기 커리어는 쭉 하락세를 걸었습니다.
2003년 KBS 주말 드라마 진주 목걸이, 2004년 SBS 수목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 2005년 MBC 수목 드라마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에서 주연을 맡아 드라마 커리어는 이어갔지만 90년대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란 말이 무색하게 시청률이 좋지 않았습니다.
2006년 tvN 개국기념 미니시리즈 <하이에나> 를 끝으로 원톱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2008년 MBC 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 2009년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2011년 SBS 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 등을 거치며 주연의 자리에서 확실히 내려오게 되었고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해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러다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복귀.
팬들의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완벽한 연기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미중년 컨셉으로 다시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자신이 '신사의 품격'에서 맡은 최윤 변호사 역을 그대로 활용하여 차관우를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웃하려 제의를 하는 선배 변호사로 등장.
또한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성동일'과 인연을 맺은 자신의 캐릭터 '김민종'으로 분하여 2002년 나정의 결혼식 때 삼천포와 같이 축가 '너만을 느끼며'를 불렀습니다.
2015년에는 SBS 드라마 미세스 캅을 2016년에는 시리즈편인 미세스 캅 2에서 박종호 역할로 출연합니다.
2017년, MBC 월화특별기획 투깝스에 조항준 역으로 특별출연.
또한 12월에 개봉한 신과 함께 죄와 벌에도 우정 출연하여 과거 인기 스타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SBS 드라마 배가본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윤한기 역할로 출연했는데,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에 이어 두 번째 악역을 맡았습니다.
3. 가수 활동
1992년 솔로 1집 또 다른 만남을 위해 로 데뷔하여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신인으로서 이례적으로 바로 10위 안에 들며 가수로서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993년 솔로 2집 하늘아래서가 1위를 하고 크게 히트하여 락발라드 대표 주자로 떠올랐습니다.
또한 솔로 1집 활동이 끝나가던 시기인 1992년 12월에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하나인 손지창과 함께 2인조 그룹 더 블루를 결성해서 투유초콜릿 CF송이자 더블루 1집 타이틀 너만을 느끼며 (1992), 손지창과 함께 주연을 맡은 드라마 느낌의 OST 그대와 함께 (1994), 더블루 2집 후속 친구를 위해 (1995)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듀엣 그룹으로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정규 앨범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의 OST도 직접 불러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드라마 <열정시대>의 '내가 알고 있는 미소', 느낌의 '그대와 함께' 드라마 머나먼 나라의 'Endless Love', 미스터Q의 '세상 끝에서의 시작', 드라마 사랑하세요의 '항상 그 자리에', 드라마 수호천사의 '난 다를거야', 영화 패밀리의 '추억애' 그리고 2010년대로 넓히면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아름다운 아픔' 등이 있습니다.
솔로 1, 2집과 더블루 1,2집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후 1996년에는 본인이 주연을 맡고 배우 이경영(1960)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귀천도의 OST 겸 솔로 3집 타이틀이었던 귀천도애가 그전 앨범들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1996년 하반기 가요계를 평정하여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유력 대상 후보로 여겨졌으나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싹쓸이할 때 귀천도애가 일본 노래를 표절한 걸로 판정되어 가요톱텐에서 사과 방송을 한 다음 1위 후보에서 자진 하차하고 가수활동 잠정중단 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던 드라마 <머나먼 나라>의 OST이자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후속곡 Endless Love 활동 역시 불미스럽게 접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2년간 가수로서는 활동을 하지 않다가 미련이 많이 남았는지 착한 사랑 작곡가 김도형과 가수 신승훈, 가수 이소라 등 주위의 설득에 김민종의 대표곡으로 아직도 사랑받는 록발라드 명곡 착한 사랑의 작사를 직접하면서 2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합니다.
착한사랑은 1998년에 가요프로그램 1위를 수차례 기록하며 대히트를 기록하였고 김민종은 과거 인기 가수의 영광을 되찾습니다.
그 뒤 발매하는 앨범마다 큰 인기를 끌고 가요프로그램 1위를 쓸어담으며 2000년대 초중반까지 90년대 대표 남자 인기 가수이자 록발라드의 대표 주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집 또다른 만남을 위해 / 투유, 2집 하늘 아래서, 3집 귀천도애 / Endless Love, 4집 착한 사랑 / 그래도 그대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야 / 세상끝에서의 시작, 5집 비원 / 순수, 6집 왜 / 아름다운 아픔, 7집 You're My Life / 하얀 그리움, 8집 바보처럼 등의 여러 히트곡들을 남겼습니다.
특유의 목을 쥐어짜는 창법과 열창할 때 미간이 찌푸려지는 표정, 무대에서 쓰러질 듯한 모습은 많은 연예인들이 개인기로 따라했고 1970~1980년대생들이 노래방에서 김민종의 포즈를 많이 따라하며 노래를 불렀었습니다.
미간을 찡그리고 콧부리에 집게손을 살짝 얹으며 그대여를 하는 게 정석입니다.
2005년 영화 종려나무숲의 OST '좋은 사람 만나요', 2008년 드라마 천하일색박정금의 OST '이별도 사랑이다' 등의 OST를 발매하였으나 정규앨범은 2003년 솔로 8집 이후로 더이상 발매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최근 음반을 발매하지 않는 이유는 음악을 잘 해낼 자신이 없고 잘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서 가요계에 나서기가 부끄럽다고 털어놓았습니다.
2012년에는 신사의 품격의 OST를 발매하였는데 본인의 6집 후속곡이던 아름다운 아픔을 재녹음해서 수록하였고 이 노래가 최근 참여한 음악 활동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1위를 하고 숱한 히트곡을 남긴 레전드 남자 솔로 중의 한 명이지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에게는 가수 김민종의 모습이 생소한데, 2003년 솔로 8집 바보처럼 활동 이후로는 배우에만 전념하여 가수로서의 모습을 TV나 공연 등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전 출생 세대들에게는 학창시절 최고의 인기 가수 중 한 명이었고 특히 노래방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어가던 1990년대 중후반에 김민종의 히트곡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남자들의 대표 애창곡들이었습니다.
특히 남심을 자극하는 음색과 본인이 직접 작사한 슬픈 가삿말들로 인해 남학생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록발라드 가수치고는 노래의 난도가 높거나 고음이 많은 편은 아니었고, 가창력 역시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본인의 음역대에 맞는 곡들을 김민종 특유의 간지 와 애절한 감성으로 본인의 노래들을 잘 소화해내었습니다.
악을 쓰면서 목으로 노래를 부르고 전업 가수가 아니란 비판도 당대에 있었으나 톱배우로서의 인기를 떠나서 가수로서 뛰어난 감정 전달 능력을 보여주어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습니다.
그러나 3집 귀천도애부터 목을 긁는 스크래치 창법으로 창법을 바꾸어서 음역대가 많이 가라앉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잦은 술담배로 인한 관리 실패로 본인의 히트곡들을 원키로 소화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목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모창 프로그램 히든 싱어 시즌 1때부터 섭외 1순위였던 가수 김민종이 지금까지도 출연하지 않는 이유 역시 계속 언급하듯이 김민종 본인이 목 관리에 실패하여 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김정민과 창법이 유사합니다.
히든 싱어에서 이 두 사람의 모창을 한 강균성은 김민종의 창법은 포장도로, 김정민은 비포장도로라고 알기 쉽게 비교 분석을 했습니다.
또한 김정민의 오랜 팬 희철은 둘의 창법 차이를 정민이형은 직진형, 민종이형은 사선(45도) 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출처2020년 현재 사실상 가수로서는 커리어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다만 인터뷰나 방송에 나오면 여전히 음악적 갈증은 마음 속에 있다고 하고 라디오 스타나 복면가왕 게스트로 나와서 가끔씩 본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앨범을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히든싱어4 보아 편에 패널로 나왔을 때는 자기는 1라운드에서 떨어질 거라며 히든 싱어 출연을 고사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김민종의 모창자를 꾸준히 모으고 있지만 시즌 6까지 방영했음에도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즌7 모집 티저에 얼굴을 비추면서 드디어 히든 싱어 출연이 성사되었습니다.
그리고 히든 싱어 7의 세 번째 원조 가수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2월 21일 오후 6시, 신곡 긴 밤(Endless Night)을 발매했습니다.
가수 데뷔 30주년 기념 음원이며,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 OST로 불렀던 본인의 곡 아름다운 아픔 이후 10년 만의 음원입니다.
이번 신곡 발표에 대해 “벌써 30주년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지만, 돌아보면 많은 추억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고 직접 소감을 밝혔으며, “긴 밤, 아무리 밤이 길어도 내일은 찾아옵니다.
또 다른 기분 좋은 내일을 위해, 오늘 하루도 잘 이겨내며 즐겁게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응원의 메시지 또한 더했습니다.
2022년 2월 25일 오후 6시, 유튜브 'Studio FLO 스튜디오 플로' 채널을 통해 긴 밤(Endless Night) 라이브 영상을 첫 공개했습니다.
2022년 3월 3일, 엠카운트 다운에 출연해 긴 밤(Endless Night)을 불렀습니다.
이는 긴 밤 활동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른 음악 방송 무대이며, 13년 만에 가수로서 음악 방송에 출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993년 솔로 2집 하늘아래서가 1위를 하고 크게 히트하여 락발라드 대표 주자로 떠올랐습니다.
또한 솔로 1집 활동이 끝나가던 시기인 1992년 12월에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하나인 손지창과 함께 2인조 그룹 더 블루를 결성해서 투유초콜릿 CF송이자 더블루 1집 타이틀 너만을 느끼며 (1992), 손지창과 함께 주연을 맡은 드라마 느낌의 OST 그대와 함께 (1994), 더블루 2집 후속 친구를 위해 (1995)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듀엣 그룹으로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정규 앨범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의 OST도 직접 불러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드라마 <열정시대>의 '내가 알고 있는 미소', 느낌의 '그대와 함께' 드라마 머나먼 나라의 'Endless Love', 미스터Q의 '세상 끝에서의 시작', 드라마 사랑하세요의 '항상 그 자리에', 드라마 수호천사의 '난 다를거야', 영화 패밀리의 '추억애' 그리고 2010년대로 넓히면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아름다운 아픔' 등이 있습니다.
솔로 1, 2집과 더블루 1,2집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후 1996년에는 본인이 주연을 맡고 배우 이경영(1960)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귀천도의 OST 겸 솔로 3집 타이틀이었던 귀천도애가 그전 앨범들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1996년 하반기 가요계를 평정하여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유력 대상 후보로 여겨졌으나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싹쓸이할 때 귀천도애가 일본 노래를 표절한 걸로 판정되어 가요톱텐에서 사과 방송을 한 다음 1위 후보에서 자진 하차하고 가수활동 잠정중단 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던 드라마 <머나먼 나라>의 OST이자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후속곡 Endless Love 활동 역시 불미스럽게 접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2년간 가수로서는 활동을 하지 않다가 미련이 많이 남았는지 착한 사랑 작곡가 김도형과 가수 신승훈, 가수 이소라 등 주위의 설득에 김민종의 대표곡으로 아직도 사랑받는 록발라드 명곡 착한 사랑의 작사를 직접하면서 2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합니다.
착한사랑은 1998년에 가요프로그램 1위를 수차례 기록하며 대히트를 기록하였고 김민종은 과거 인기 가수의 영광을 되찾습니다.
그 뒤 발매하는 앨범마다 큰 인기를 끌고 가요프로그램 1위를 쓸어담으며 2000년대 초중반까지 90년대 대표 남자 인기 가수이자 록발라드의 대표 주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집 또다른 만남을 위해 / 투유, 2집 하늘 아래서, 3집 귀천도애 / Endless Love, 4집 착한 사랑 / 그래도 그대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야 / 세상끝에서의 시작, 5집 비원 / 순수, 6집 왜 / 아름다운 아픔, 7집 You're My Life / 하얀 그리움, 8집 바보처럼 등의 여러 히트곡들을 남겼습니다.
특유의 목을 쥐어짜는 창법과 열창할 때 미간이 찌푸려지는 표정, 무대에서 쓰러질 듯한 모습은 많은 연예인들이 개인기로 따라했고 1970~1980년대생들이 노래방에서 김민종의 포즈를 많이 따라하며 노래를 불렀었습니다.
미간을 찡그리고 콧부리에 집게손을 살짝 얹으며 그대여를 하는 게 정석입니다.
2005년 영화 종려나무숲의 OST '좋은 사람 만나요', 2008년 드라마 천하일색박정금의 OST '이별도 사랑이다' 등의 OST를 발매하였으나 정규앨범은 2003년 솔로 8집 이후로 더이상 발매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최근 음반을 발매하지 않는 이유는 음악을 잘 해낼 자신이 없고 잘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서 가요계에 나서기가 부끄럽다고 털어놓았습니다.
2012년에는 신사의 품격의 OST를 발매하였는데 본인의 6집 후속곡이던 아름다운 아픔을 재녹음해서 수록하였고 이 노래가 최근 참여한 음악 활동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1위를 하고 숱한 히트곡을 남긴 레전드 남자 솔로 중의 한 명이지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에게는 가수 김민종의 모습이 생소한데, 2003년 솔로 8집 바보처럼 활동 이후로는 배우에만 전념하여 가수로서의 모습을 TV나 공연 등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전 출생 세대들에게는 학창시절 최고의 인기 가수 중 한 명이었고 특히 노래방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어가던 1990년대 중후반에 김민종의 히트곡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남자들의 대표 애창곡들이었습니다.
특히 남심을 자극하는 음색과 본인이 직접 작사한 슬픈 가삿말들로 인해 남학생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록발라드 가수치고는 노래의 난도가 높거나 고음이 많은 편은 아니었고, 가창력 역시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본인의 음역대에 맞는 곡들을 김민종 특유의 간지 와 애절한 감성으로 본인의 노래들을 잘 소화해내었습니다.
악을 쓰면서 목으로 노래를 부르고 전업 가수가 아니란 비판도 당대에 있었으나 톱배우로서의 인기를 떠나서 가수로서 뛰어난 감정 전달 능력을 보여주어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습니다.
그러나 3집 귀천도애부터 목을 긁는 스크래치 창법으로 창법을 바꾸어서 음역대가 많이 가라앉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잦은 술담배로 인한 관리 실패로 본인의 히트곡들을 원키로 소화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목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모창 프로그램 히든 싱어 시즌 1때부터 섭외 1순위였던 가수 김민종이 지금까지도 출연하지 않는 이유 역시 계속 언급하듯이 김민종 본인이 목 관리에 실패하여 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김정민과 창법이 유사합니다.
히든 싱어에서 이 두 사람의 모창을 한 강균성은 김민종의 창법은 포장도로, 김정민은 비포장도로라고 알기 쉽게 비교 분석을 했습니다.
또한 김정민의 오랜 팬 희철은 둘의 창법 차이를 정민이형은 직진형, 민종이형은 사선(45도) 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출처2020년 현재 사실상 가수로서는 커리어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다만 인터뷰나 방송에 나오면 여전히 음악적 갈증은 마음 속에 있다고 하고 라디오 스타나 복면가왕 게스트로 나와서 가끔씩 본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앨범을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히든싱어4 보아 편에 패널로 나왔을 때는 자기는 1라운드에서 떨어질 거라며 히든 싱어 출연을 고사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김민종의 모창자를 꾸준히 모으고 있지만 시즌 6까지 방영했음에도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즌7 모집 티저에 얼굴을 비추면서 드디어 히든 싱어 출연이 성사되었습니다.
그리고 히든 싱어 7의 세 번째 원조 가수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2월 21일 오후 6시, 신곡 긴 밤(Endless Night)을 발매했습니다.
가수 데뷔 30주년 기념 음원이며,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 OST로 불렀던 본인의 곡 아름다운 아픔 이후 10년 만의 음원입니다.
이번 신곡 발표에 대해 “벌써 30주년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지만, 돌아보면 많은 추억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고 직접 소감을 밝혔으며, “긴 밤, 아무리 밤이 길어도 내일은 찾아옵니다.
또 다른 기분 좋은 내일을 위해, 오늘 하루도 잘 이겨내며 즐겁게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응원의 메시지 또한 더했습니다.
2022년 2월 25일 오후 6시, 유튜브 'Studio FLO 스튜디오 플로' 채널을 통해 긴 밤(Endless Night) 라이브 영상을 첫 공개했습니다.
2022년 3월 3일, 엠카운트 다운에 출연해 긴 밤(Endless Night)을 불렀습니다.
이는 긴 밤 활동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른 음악 방송 무대이며, 13년 만에 가수로서 음악 방송에 출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4. 종교
불교의 상징이라 할 만한 '卍(만)'자 목걸이를 즐길 정도로, 연예계에서 꽤나 유명한 불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구니인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친구들과 사찰을 자주 찾았고, 학창 시절 한때 절에서 학교를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힐링캠프에 나왔을 때 만자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이유를 언급했는데 그때 김민종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패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사고 합의금을 많이 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유치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외할머니 귀에 들어갔고, 그 소식을 들은 외할머니가 손자 합의금을 물어주기 위해 얼어있는 계단을 막 뛰어내려 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져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후로 외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만자 목걸이를 쭉 차고 활동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시상식에서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는 수상소감을 밝혔고, 2012년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부처님의 자비로움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친 만큼 그 감회가 남다른 듯합니다.
여담으로 개 같은 날의 오후 영화에서도 '卍' 목걸이 매고 나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비구니인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친구들과 사찰을 자주 찾았고, 학창 시절 한때 절에서 학교를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힐링캠프에 나왔을 때 만자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이유를 언급했는데 그때 김민종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패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사고 합의금을 많이 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유치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외할머니 귀에 들어갔고, 그 소식을 들은 외할머니가 손자 합의금을 물어주기 위해 얼어있는 계단을 막 뛰어내려 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져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후로 외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만자 목걸이를 쭉 차고 활동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시상식에서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는 수상소감을 밝혔고, 2012년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부처님의 자비로움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친 만큼 그 감회가 남다른 듯합니다.
여담으로 개 같은 날의 오후 영화에서도 '卍' 목걸이 매고 나왔습니다.
5. 근황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그 인기가 다소 주춤하게 됐는데, 나이를 먹기 시작한 것도 있고, 앞서 언급했듯 영화에서의 지속적인 실패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가수로서의 활동을 접은 게 큽니다.
김정민 버금갈 만큼 목을 쥐어짜는 듯한 스크래치 창법을 구사했던 만큼, 목에 부담이 많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톱가수로서의 모습을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새로운 90년대생 세대들에게는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90년대 전성기 시절에도 대중들이 톱배우 김민종보다 톱가수 김민종의 모습을 더 친근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수로서의 모습을 더이상 보여주지 않게 되자 귀신같이 연기 커리어 역시 하락세를 걸었습니다.
김민종처럼 연기력, 음악실력 모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연마한 연예인은 지금도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쌓아가서 과거와 같이 활발히 활동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가수이며, 꾸준하게 활동을 하는 만큼, 팬들은 그가 다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SM에서 인수한 여행사에 사외이사로 선임이 되어서 SM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간부가 되었습니다.
2019년에 KBS 육아예능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에 출연하여 미혼남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20년 11월 29일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새로운 아들로 출연했습니다.
2020년부터 본인이 직접 화장품을 런칭하였으며, 윤다훈, 김구라 등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골프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021년 4월 수미산장에 절친한 형 윤다훈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김정민 버금갈 만큼 목을 쥐어짜는 듯한 스크래치 창법을 구사했던 만큼, 목에 부담이 많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톱가수로서의 모습을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새로운 90년대생 세대들에게는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90년대 전성기 시절에도 대중들이 톱배우 김민종보다 톱가수 김민종의 모습을 더 친근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수로서의 모습을 더이상 보여주지 않게 되자 귀신같이 연기 커리어 역시 하락세를 걸었습니다.
김민종처럼 연기력, 음악실력 모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연마한 연예인은 지금도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쌓아가서 과거와 같이 활발히 활동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가수이며, 꾸준하게 활동을 하는 만큼, 팬들은 그가 다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SM에서 인수한 여행사에 사외이사로 선임이 되어서 SM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간부가 되었습니다.
2019년에 KBS 육아예능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에 출연하여 미혼남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20년 11월 29일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새로운 아들로 출연했습니다.
2020년부터 본인이 직접 화장품을 런칭하였으며, 윤다훈, 김구라 등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골프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021년 4월 수미산장에 절친한 형 윤다훈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
- 연예인으로 데뷔하자마자 사고를 냈습니다. 위의 '인간관계' 단락의 박중훈과의 인연 참고.
- 가수로서 총 2번의 표절사건을 겪었습니다.1992년 더 블루 1집 수록곡 <나를 위해>.1996년 개인 3집 수록곡 <귀천도애>.
- 1992년 더 블루 1집 수록곡 <나를 위해>.
- 1996년 개인 3집 수록곡 <귀천도애>.
- 의외로 심각한 방송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 홍보차 나온 한밤의 TV연예에서 사회자 유정현이 그가 맡은 깡패 역의 극 중 한 장면을 한번 보여달라고 계속 요청하자 생방송인데도 실제 쌍욕을 넣어 '야 이 씨박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라고 거하게 대사를 친 뒤 자기도 놀라 '큰일 났습니다. 방송사고다! 어쩌지? 시키시니까 하긴 했는데' 라고 한 흑역사 중 흑역사다. 당시 데뷔한 지 10년차라 방송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인데도 저런 실수를 했단 것입니다. 다만 당시 진행자 유정현도 과했던 것이 계속 강하게 해달라면서 김민종을 몰아 세웠다. 그래서 김민종도 순간 욱해서 욕을 섞어가며 연기했고 그와 동시에 유정현을 쏘아보며 '시킨 대로 했다, 어쩔 거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유정현 역시 시켜놓고 막상 방송사고를 터트리니 살짝 화나서 이 악물고 '그래 했다 이거지' 이런 식으로 대꾸했습니다. 다소 격앙된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 함께 주연을 맡아 방송에도 함께 나온 이경영이 진행자와 김민종 모두 말을 더듬고 있을 때 "제가 앞으로 김민종 씨 언어순화 교육을 책임지고 살겠습니다"라고 유머러스하게 넘겨서 욕을 덜 먹었습니다. 퓨어한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도 퓨어합니다.
- 1997년 이휘재의 인생극장 출연 당시, 극중 격투 과정에서 실수로 주인공 이휘재의 얼굴에 부상을 입힌 적이 있습니다. 이휘재는 그 부상으로 인생극장 다음 회차 촬영을 쉬어야 했고, 김민종이 이휘재를 대신해서 다음 회차 주인공을 맡습니다.
- 1998년 미스터Q 출연 당시, 사석에서 김희선의 따귀를 때린 적이 있습니다.
- 2013년 10월 말~11월 초 2주 간에 걸쳐 힐링캠프에 초청되는 등 조금씩 극 이외의 매체에도 등장하면서 다시 주목 받는 중. 이날 방송을 보면 DSP미디어 이호연과 친해서, 과거 이호연과 핑클이랑 같이 일본에 놀러갔었다고 합니다. 그 때 성유리가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졌는데, 김민종이 와서 구해줬다고 밝혔습니다.
- 2015년 11월 부산 조직 폭력배 칠성파 간부 결혼식에 나와 손지창과 같이 진행을 맡았습니다. 이에 대한 취재에 둘 다 피해 다니기만 했다고 합니다.
- 2020년 11월 28일 정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했습니다. @ 일단 출연 사유로는 소장인 강용석과 방송 이후에 여러 번 술자리를 가지면서 생긴 개인적인 인연으로 출연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24일 모친상을 당했을 때는 김세의 대표와 김용호 연예부장이 직접 조문을 와줬었다고 합니다. 정치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지만 전혀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는 않았고 연예계 쪽 얘기와 최근 근황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특히 가로세로연구소측이 빅히트를 비난했던 것을 김세의 대표가 언급하자 가로세로연구소측이 그러면 안된다며 SM도 그렇고 빅히트도 그렇고 가로세로연구소가 유하게 나가야 한다며 조언이 섞인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출연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논란을 샀는데, 선후배 동료 연예인들의 죽음에 대해 조롱하거나 말이 안되는 유언비어를 사실인 것 마냥 내보내는 곳에 출연하여 화장품을 홍보하고 응원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냐며 비판을 받았습니다.
김민종,나이,결혼,부인,재산,아들,노래,히든 싱어,가세연,이승연,프로필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