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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임재범
任宰範 | Yim Jae-b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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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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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 14일 (5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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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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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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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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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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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cm, 76kg, O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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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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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임택근
이복동생 손지창, 고종사촌 성 김 |
배우자 송남영
딸 임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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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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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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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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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시나위 1집 앨범
'크게 라디오를 켜고'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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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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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
블루씨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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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록 음악, R&B, 발라드 가수이자, 한국 최초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1집 보컬리스트다.
1986년 서울고 동창인 신대철의 밴드 <시나위> 1집에 참여하여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르면서 대중 음악계에 데뷔를 했습니다.
참고로 시나위의 1집인 'Heavy Metal Sinawe'는 국내 최초의 헤비메탈 음반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드록에서 헤비메탈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 스스로를 헤비메탈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습니다.
1986년 서울고 동창인 신대철의 밴드 <시나위> 1집에 참여하여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르면서 대중 음악계에 데뷔를 했습니다.
참고로 시나위의 1집인 'Heavy Metal Sinawe'는 국내 최초의 헤비메탈 음반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드록에서 헤비메탈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 스스로를 헤비메탈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습니다.
2. 가창력
3. 히트곡
시나위 1집 앨범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이 밤이 지나면, 사랑보다 깊은 상처, 비상, 고해, 그대는 어디에, 너를 위해, 낙인, 사랑이 유명합니다.
4. 성격
어릴적부터 고아원에서 살았다거나, 생년월일이 불분명한 것 등등 다사다난한 일을 많이 겪어서인지, 심리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웠다고 전해지며, 나가수 출연 전까진 TV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공연과 음반활동 위주로 가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엔 활동 도중에 매니저조차 따돌리고 홀연히 잠적하는 경우가 많아서 방송 펑크가 잦은 것으로도 유명했다거나 록음악을 하다가 발라드 혹은 R&B 로 전향하면서 록에 대한 배신자로 찍혀서 많은 비난을 받아서 잠적을 했다는 말이 있느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임재범은 1집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에 표절 판정을 받았고 방송 3사에 출연 금지를 당해서 방송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루머가 워낙 많은 임재범이지만 지인들의 임재범 성격에 대한 평은 세간의 평과 상당히 다르다.
일례로 30년 지기인 김도균은 MBN '아궁이'에서 "평소 임재범은 양처럼 순합니다.
다만 너무 바르고 교과서적이다 보니, 틀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교과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 부분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임재범을 '거친 남자'로 오해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김도균, "카리스마 임재범, 양처럼 순한 사람"손지창은 2001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형과 몇 번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내가 형의 동생이라는 점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괴팍하다는 소문과는 달리 다정다감했고 모든 면에 천재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순박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 한편, 손지창은 지난 2011년 3부자 상봉 후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좋은 형을 갖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형은 음악적 재능을 떠나서라도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임재범에 대한 마음을 밝혔습니다.
기사동창들에 따르면, 임재범은 J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J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당시 학생들의 제식 훈련을 지휘하는 '학생 연대장'을 지냈고, 또 학생들의 질서를 담당하는 규율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서울고등학교를 다니다 가수를 하기 위해 자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재범의 학창시절그와 친했던 동창생들은 그가 우등생까지는 아니었어도 반듯한 학생이었고, 일단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매우 유머러스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임재범의 국민학교 동창인 B씨는 "재범이는 늘 좋은 옷을 입은 예쁘장한 아이였고, 쾌활하고 명랑했다"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동창인 C씨는 "그가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낯을 좀 가리는 편이어서 평소에는 무게를 잡았지만, 일단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배한성씨나 이대근씨의 성대모사를 하거나, 가수들 모창도 들려주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C씨는 "친한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얘기들을 자주 들려줘서 웃음을 주는, 아주 유머러스하고 착한 친구였다"고 말했습니다.
"한번의 이혼을 통해 가정과 직장, 세상 명예와 나의 아버지까지 잃은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잃고 상처받았을 나의 아들을 위로하며 용기와 격려를 해주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가수 임재범과 그의 아내 연극배우 송남영 부부가 그들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중에 가수 임재범은 가장 순수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입니다.
교회 주변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과 장애우, 그리고 한가정 부모의 아이들이 대부분인 교회 공부방 아이들에게 연극과 뮤지컬, 노래를 가르치며 오랜동안 봉사해 온 송남영 선생을 수년간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착하고 선한 부부입니다.
임재범/송남영 부부에 대한 어느 무명 성도의 이야기정성호는 "사실 '나도 가수다'는 일회성 코너로 기획됐어요.
처음에는 괜히 희화화해 누가 될까봐 겁이 났죠.
부담이 컸는데 예상과 달리 반응이 엄청나더라고요.
그래도 불안감이 없지 않았는데 임재범 형님이 직접 전화를 해주셔서 '즐겁게 잘 보고 있다', '계속 같이 잘 해보자'고 응원해 주셔서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죠.
"라고 말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임재범은 최근 콘서트 무대에서 정재범을 화제로 올렸고, 정성호에게 문자를 보내 소재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걱정도 해줬습니다.
심지어 '이런 걸 해보는 건 어떠냐'고 아이디어까지 제공해줬습니다.
정성호는 "아직 실제로 뵙진 못했지만 정말 털털하고 좋은 분이고, 제가 웃다가 통화가 끝날 만큼 유머감각이 탁월한 분"이라면서 "(임재범 씨가) 가수가 아니라 배우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기사정성호는 임재범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6개월 간 '나도 가수다'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임재범의 지원이 컸습니다.
그는 "사실 하는 동안 안티팬이 많이 늘었습니다.
임재범 형 팬들의 미움을 많은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는데 임재범 형이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줘 지금까지 잘해올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기사다음주에 둘째 딸을 갖게 되는 정성호는 "정재범이 라는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는데 둘째도 딸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아들을 낳을 때까지만 계속 낳자'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정성호는 MBC TV '웃고 또 웃고-나도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을 따라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임재범은 정성호 부부를 직접 자신의 콘서트에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정성호는 "임재범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부부를 정말 잘 챙겨주셨다.
나와 아내를 자신의 콘서트 무대에 세워줘서 영광이었다"며 "말이 별로 없으셨는데도 포스가 대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정성호, 임재범 때문? "아들 낳으면 재범이라는 이름 붙여줄 것"김영호는 임재범을 "자기 세계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김영호는 "방송에선 귀엽고 익살스런 임대디의 모습이 많이 비춰지지만 촬영하지 않을 땐 남에게 말도 안 걸고 조용히 음악만 들어요.
자기 세계가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기 힘들어 하지만 누구보다 맑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사차지연은 "임재범 씨를 처음 봤을 때 무섭지는 않았나"라는 질문에 "진짜 무서워서 기가 팍 죽었습니다.
그러다 두세 번 뵙고 나니 겉으로 표현은 못해도 속은 참 여린 분이란 생각이 들더라.
투박하게 '밥 먹었나'라고 짧게 말을 해도 영혼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란 느낌이 왔습니다.
"고 밝혔습니다.
기사윤도현은 임재범의 첫인상에 대해 "무서웠지만 막상 만나 보니 선하시다"며 "임재범을 만났을 때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임재범 형님과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강렬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픈 묘한 에너지를 가진 분"이라고 전했습니다.
기사 "임재범의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가면 잘해주고 선물도 해주며 자상하게 대해줬다 그래서 나도 답례로 자전거를 드렸다"며 우정을 과시했다(힐링 캠프).
기사소울다이브는 "호랑이 같은 면은 선배님의 카리스마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호랑이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강한 면모 속 숨겨 놓은 부드러운 진심으로 후배들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다"며 "식사를 챙겨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배려해주시는 따뜻한 분"이라고 호랑이보다는 어머님같은 선배라고 전했습니다.
소울다이브, 호랑이 같은 임재범에 "호랑이 아닌 어머님"1집 당시 록을 버리고 다른 장르를 시도했을 당시엔 출연 정지를 당해서 나오고 싶어도 못나왔고, 자의로 잠적한 게 아니다라며 자신의 억측을 사실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임재범이 이밤이 지나면으로 나가수 출연 당시만큼 인기를 얻었던 건 1991년이었고, 출연정지 기사가 난 건 1993년 3월 이후입니다.
그가 1년간 오대산에서 칩거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관련 기사92년 특종 TV연예 임재범 신대철을 비롯한 시나위 멤버들과 함께 '특종 TV 연예'에 출연한 임재범은 인터뷰에서 "혹시 또 한 번 증발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글쎄요.
증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날아가 없어진다는 뜻인데 제가 물이 아니므로, 더는 증발할 이유는 없고 다 말랐습니다.
이제"라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 임재범의 반항적인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었다(1992년).
임재범은 "1990년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에 나가서 '이 밤이 지나면'을 딱 한 번 불렀는데 지금의 '나는 가수다'(나가수) 같은 반응이 왔습니다.
하루 새에 갑자기 음악 차트 3, 4위 상위권에 랭크가 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실제로 임재범 1집은 60만장 이상 팔리는 놀라운 판매고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록커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임재범에게 이들은 '솔로로 잘 나가서 좋냐'고 비아냥 거렸고 록커의 자존심을 버렸단 생각에 임재범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가끔 포장마차 이런 데서 막걸리 한잔 할 때면 신대철한테 무조건 사과부터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그는 록커로서가 아니라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렸습니다.
결국 그는 리듬 앤 블루스나 소울, 발라드는 진정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며 오대산 등에서 1년간 잠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에도 앨범을 내고 잠적하고 다시 돌아와 앨범을 내고 잠적하는, 아니 증발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김준원은 임재범이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한 잠적을 했다고 했고, 실제로 소속사에게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잠적은 임재범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임재범은 가수를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연예계 상황, 홀대받는 한국 락 음악,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가수를 존중해주지 않고 비판하는 대중들에게 스트레스를 느꼈고, 이런 점 또한 잠적에 작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기사.
젊은 시절엔 활동 도중에 매니저조차 따돌리고 홀연히 잠적하는 경우가 많아서 방송 펑크가 잦은 것으로도 유명했다거나 록음악을 하다가 발라드 혹은 R&B 로 전향하면서 록에 대한 배신자로 찍혀서 많은 비난을 받아서 잠적을 했다는 말이 있느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임재범은 1집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에 표절 판정을 받았고 방송 3사에 출연 금지를 당해서 방송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루머가 워낙 많은 임재범이지만 지인들의 임재범 성격에 대한 평은 세간의 평과 상당히 다르다.
일례로 30년 지기인 김도균은 MBN '아궁이'에서 "평소 임재범은 양처럼 순합니다.
다만 너무 바르고 교과서적이다 보니, 틀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교과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 부분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임재범을 '거친 남자'로 오해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김도균, "카리스마 임재범, 양처럼 순한 사람"손지창은 2001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형과 몇 번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내가 형의 동생이라는 점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괴팍하다는 소문과는 달리 다정다감했고 모든 면에 천재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순박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 한편, 손지창은 지난 2011년 3부자 상봉 후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좋은 형을 갖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형은 음악적 재능을 떠나서라도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임재범에 대한 마음을 밝혔습니다.
기사동창들에 따르면, 임재범은 J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J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당시 학생들의 제식 훈련을 지휘하는 '학생 연대장'을 지냈고, 또 학생들의 질서를 담당하는 규율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서울고등학교를 다니다 가수를 하기 위해 자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재범의 학창시절그와 친했던 동창생들은 그가 우등생까지는 아니었어도 반듯한 학생이었고, 일단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매우 유머러스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임재범의 국민학교 동창인 B씨는 "재범이는 늘 좋은 옷을 입은 예쁘장한 아이였고, 쾌활하고 명랑했다"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동창인 C씨는 "그가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낯을 좀 가리는 편이어서 평소에는 무게를 잡았지만, 일단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배한성씨나 이대근씨의 성대모사를 하거나, 가수들 모창도 들려주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C씨는 "친한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얘기들을 자주 들려줘서 웃음을 주는, 아주 유머러스하고 착한 친구였다"고 말했습니다.
"한번의 이혼을 통해 가정과 직장, 세상 명예와 나의 아버지까지 잃은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잃고 상처받았을 나의 아들을 위로하며 용기와 격려를 해주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가수 임재범과 그의 아내 연극배우 송남영 부부가 그들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중에 가수 임재범은 가장 순수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입니다.
교회 주변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과 장애우, 그리고 한가정 부모의 아이들이 대부분인 교회 공부방 아이들에게 연극과 뮤지컬, 노래를 가르치며 오랜동안 봉사해 온 송남영 선생을 수년간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착하고 선한 부부입니다.
임재범/송남영 부부에 대한 어느 무명 성도의 이야기정성호는 "사실 '나도 가수다'는 일회성 코너로 기획됐어요.
처음에는 괜히 희화화해 누가 될까봐 겁이 났죠.
부담이 컸는데 예상과 달리 반응이 엄청나더라고요.
그래도 불안감이 없지 않았는데 임재범 형님이 직접 전화를 해주셔서 '즐겁게 잘 보고 있다', '계속 같이 잘 해보자'고 응원해 주셔서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죠.
"라고 말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임재범은 최근 콘서트 무대에서 정재범을 화제로 올렸고, 정성호에게 문자를 보내 소재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걱정도 해줬습니다.
심지어 '이런 걸 해보는 건 어떠냐'고 아이디어까지 제공해줬습니다.
정성호는 "아직 실제로 뵙진 못했지만 정말 털털하고 좋은 분이고, 제가 웃다가 통화가 끝날 만큼 유머감각이 탁월한 분"이라면서 "(임재범 씨가) 가수가 아니라 배우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기사정성호는 임재범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6개월 간 '나도 가수다'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임재범의 지원이 컸습니다.
그는 "사실 하는 동안 안티팬이 많이 늘었습니다.
임재범 형 팬들의 미움을 많은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는데 임재범 형이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줘 지금까지 잘해올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기사다음주에 둘째 딸을 갖게 되는 정성호는 "정재범이 라는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는데 둘째도 딸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아들을 낳을 때까지만 계속 낳자'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정성호는 MBC TV '웃고 또 웃고-나도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을 따라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임재범은 정성호 부부를 직접 자신의 콘서트에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정성호는 "임재범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부부를 정말 잘 챙겨주셨다.
나와 아내를 자신의 콘서트 무대에 세워줘서 영광이었다"며 "말이 별로 없으셨는데도 포스가 대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정성호, 임재범 때문? "아들 낳으면 재범이라는 이름 붙여줄 것"김영호는 임재범을 "자기 세계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김영호는 "방송에선 귀엽고 익살스런 임대디의 모습이 많이 비춰지지만 촬영하지 않을 땐 남에게 말도 안 걸고 조용히 음악만 들어요.
자기 세계가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기 힘들어 하지만 누구보다 맑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사차지연은 "임재범 씨를 처음 봤을 때 무섭지는 않았나"라는 질문에 "진짜 무서워서 기가 팍 죽었습니다.
그러다 두세 번 뵙고 나니 겉으로 표현은 못해도 속은 참 여린 분이란 생각이 들더라.
투박하게 '밥 먹었나'라고 짧게 말을 해도 영혼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란 느낌이 왔습니다.
"고 밝혔습니다.
기사윤도현은 임재범의 첫인상에 대해 "무서웠지만 막상 만나 보니 선하시다"며 "임재범을 만났을 때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임재범 형님과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강렬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픈 묘한 에너지를 가진 분"이라고 전했습니다.
기사 "임재범의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가면 잘해주고 선물도 해주며 자상하게 대해줬다 그래서 나도 답례로 자전거를 드렸다"며 우정을 과시했다(힐링 캠프).
기사소울다이브는 "호랑이 같은 면은 선배님의 카리스마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호랑이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강한 면모 속 숨겨 놓은 부드러운 진심으로 후배들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다"며 "식사를 챙겨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배려해주시는 따뜻한 분"이라고 호랑이보다는 어머님같은 선배라고 전했습니다.
소울다이브, 호랑이 같은 임재범에 "호랑이 아닌 어머님"1집 당시 록을 버리고 다른 장르를 시도했을 당시엔 출연 정지를 당해서 나오고 싶어도 못나왔고, 자의로 잠적한 게 아니다라며 자신의 억측을 사실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임재범이 이밤이 지나면으로 나가수 출연 당시만큼 인기를 얻었던 건 1991년이었고, 출연정지 기사가 난 건 1993년 3월 이후입니다.
그가 1년간 오대산에서 칩거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관련 기사92년 특종 TV연예 임재범 신대철을 비롯한 시나위 멤버들과 함께 '특종 TV 연예'에 출연한 임재범은 인터뷰에서 "혹시 또 한 번 증발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글쎄요.
증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날아가 없어진다는 뜻인데 제가 물이 아니므로, 더는 증발할 이유는 없고 다 말랐습니다.
이제"라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 임재범의 반항적인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었다(1992년).
임재범은 "1990년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에 나가서 '이 밤이 지나면'을 딱 한 번 불렀는데 지금의 '나는 가수다'(나가수) 같은 반응이 왔습니다.
하루 새에 갑자기 음악 차트 3, 4위 상위권에 랭크가 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실제로 임재범 1집은 60만장 이상 팔리는 놀라운 판매고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록커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임재범에게 이들은 '솔로로 잘 나가서 좋냐'고 비아냥 거렸고 록커의 자존심을 버렸단 생각에 임재범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가끔 포장마차 이런 데서 막걸리 한잔 할 때면 신대철한테 무조건 사과부터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그는 록커로서가 아니라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렸습니다.
결국 그는 리듬 앤 블루스나 소울, 발라드는 진정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며 오대산 등에서 1년간 잠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에도 앨범을 내고 잠적하고 다시 돌아와 앨범을 내고 잠적하는, 아니 증발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김준원은 임재범이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한 잠적을 했다고 했고, 실제로 소속사에게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잠적은 임재범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임재범은 가수를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연예계 상황, 홀대받는 한국 락 음악,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가수를 존중해주지 않고 비판하는 대중들에게 스트레스를 느꼈고, 이런 점 또한 잠적에 작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기사.
5. 듀엣곡
2019년까지의 임재범의 듀엣곡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8년 박정현 1집 사랑보다 깊은 상처 - (원곡 : 임재범 2집 - 사랑보다 깊은 상처) 1998년 박진영 5집 - 재회(With 임재범)2001년 서영은 2.
5집 -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 (원곡 : 임재범 4집 -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2006년 겨울愛(Single) - 겨울이 오면(With Tei)2010년 사랑에 아파한 날들(Single) - 사랑에 아파한 날들(With 윤하)2013년 I Love You(Single) - I Love You (With 알리)2015년 After The Sunset - White Night - 사랑보다 깊은 상처 - (With 태연) 이 중,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는 임재범 2집과 4집에서 솔로로 불렀던 곡이며, 원곡을 그대로 유지하며 각각의 파트로 녹여내어 발매한 것입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
' 특이하게도 이 곡은 보통의 남녀 듀엣과는 달리 남자 보컬이 원음을 부르고 여자 보컬이 화음을 쌓습니다.
몇몇 부분에서는 남자 보컬이 여자 보컬보다 높은 음을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커버할 때 여자 보컬들은 편하게 부르는 반면 남자 보컬들은 힘겹게 성공하거나 삑사리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애초에 듀엣곡으로 기획된 곡이 아니라 임재범이 2집에서 먼저 솔로곡으로 발표했고, 박정현이 후에 자신의 파트를 따로 녹음해서 하나로 합친 거로 임재범의 음역대에 맞춘 곡이다 보니 남자들에게는 힘들고 여자들에게는 편한 것.
2015년 9월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태연과 듀엣곡으로 다시 부르게 되었습니다.
대중들의 평은 임재범과 태연이 옛날부터 훌륭한 보컬이어서 기대된다는 반응도 있지만 2009년 눈의 꽃 사건 때문에 염려스럽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998년 박정현 1집 사랑보다 깊은 상처 - (원곡 : 임재범 2집 - 사랑보다 깊은 상처) 1998년 박진영 5집 - 재회(With 임재범)2001년 서영은 2.
5집 -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 (원곡 : 임재범 4집 -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2006년 겨울愛(Single) - 겨울이 오면(With Tei)2010년 사랑에 아파한 날들(Single) - 사랑에 아파한 날들(With 윤하)2013년 I Love You(Single) - I Love You (With 알리)2015년 After The Sunset - White Night - 사랑보다 깊은 상처 - (With 태연) 이 중,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는 임재범 2집과 4집에서 솔로로 불렀던 곡이며, 원곡을 그대로 유지하며 각각의 파트로 녹여내어 발매한 것입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
' 특이하게도 이 곡은 보통의 남녀 듀엣과는 달리 남자 보컬이 원음을 부르고 여자 보컬이 화음을 쌓습니다.
몇몇 부분에서는 남자 보컬이 여자 보컬보다 높은 음을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커버할 때 여자 보컬들은 편하게 부르는 반면 남자 보컬들은 힘겹게 성공하거나 삑사리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애초에 듀엣곡으로 기획된 곡이 아니라 임재범이 2집에서 먼저 솔로곡으로 발표했고, 박정현이 후에 자신의 파트를 따로 녹음해서 하나로 합친 거로 임재범의 음역대에 맞춘 곡이다 보니 남자들에게는 힘들고 여자들에게는 편한 것.
2015년 9월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태연과 듀엣곡으로 다시 부르게 되었습니다.
대중들의 평은 임재범과 태연이 옛날부터 훌륭한 보컬이어서 기대된다는 반응도 있지만 2009년 눈의 꽃 사건 때문에 염려스럽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6. 나는 가수다
7. 히든 싱어
8. 나는 가수다 출연 후
2011년 5월 31일 자신의 팬카페에 심신과 영혼이 지쳐 영국으로 떠난다라는 글을 올리고 돌연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나는 가수다로 갑작스럽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어난 엄청난 관심과 부담에 본인이 지친 듯.
6월 11일에 있을 돔아트홀 공연 연습을 위해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돔아트홀 공연이 취소되면서 또 도마에 올랐습니다.
임재범이 영국으로 멋대로 떠나버려서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썰을 퍼트렸지만 공연 기획사에서는 회사 내부 사정으로 취소되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래저래 파란만장한 임재범의 인생(.
).
그런 가운데 최대 음반사로 꼽히는 예당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편곡을 맡기도 했던 하광훈이 예당과 계약했던 걸로 볼 때 하광훈의 연결이 있었던 듯.
2011년 7월엔 카페라떼 CF도 찍었습니다.
그 해, 매일유업은 컵커피 시장에서 4년만에 1위를 탈환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방송 출연은 꺼리는 걸로 보입니다.
데뷔 30주년…방송가 출연 요청에 침묵2015년 3년만의 신곡이자 데뷔 30주년 기념앨범 발매로 방송가의 러브콜이 뜨거웠지만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와 ‘바람에 실려’ 이후 4년째 방송출연이 없는 임재범은 여전히 자신만의 ‘동굴’ 속에 있습니다.
6일 임재범 측에 따르면 임재범이 30주년 기념앨범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진 9월부터 토크쇼와 음악 예능을 중심으로 방송가의 출연제안이 쏟아졌습니다.
방송출연이 거의 없던 임재범은 이미지 소모가 없어, 늘 ‘신선한 인물’을 찾는 방송가의 구미에 맞는 섭외 1순위다.
특히 임재범이 올해 데뷔 3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어 방송 출연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만, 임재범은 방송가의 요청에 ‘묵묵부답’인 상황입니다.
임재범 측 관계자는 6일 “지상파와 케이블 등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고 있지만, 임재범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3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애프터 더 선셋: 화이트 나잇’은 2015년 10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2회 공연을 시작으로 인천 남동 체육관, 부산 벡스코, 울산 동천체육관, 광주 염주체육관, 일산 킨텍스, 대구 엑스코, 수원 실내체육관, 성남아트센터, 의정부 실내체육관, 그리고 서울 세종문화회관 등 2016년 2월 14일까지 총 10개 도시에서 14회 동안 진행된 투어는 성황리에 종료되었습니다.
전국 콘서트 투어는 공연 시장의 전체적 불황에도 불구, 객석 점유율 98%를 보여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임재범, 30주년 전국투어 5개월 대장정 마무리.
객석 점유율 98%.
나는 가수다로 갑작스럽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어난 엄청난 관심과 부담에 본인이 지친 듯.
6월 11일에 있을 돔아트홀 공연 연습을 위해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돔아트홀 공연이 취소되면서 또 도마에 올랐습니다.
임재범이 영국으로 멋대로 떠나버려서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썰을 퍼트렸지만 공연 기획사에서는 회사 내부 사정으로 취소되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래저래 파란만장한 임재범의 인생(.
).
그런 가운데 최대 음반사로 꼽히는 예당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편곡을 맡기도 했던 하광훈이 예당과 계약했던 걸로 볼 때 하광훈의 연결이 있었던 듯.
2011년 7월엔 카페라떼 CF도 찍었습니다.
그 해, 매일유업은 컵커피 시장에서 4년만에 1위를 탈환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방송 출연은 꺼리는 걸로 보입니다.
데뷔 30주년…방송가 출연 요청에 침묵2015년 3년만의 신곡이자 데뷔 30주년 기념앨범 발매로 방송가의 러브콜이 뜨거웠지만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와 ‘바람에 실려’ 이후 4년째 방송출연이 없는 임재범은 여전히 자신만의 ‘동굴’ 속에 있습니다.
6일 임재범 측에 따르면 임재범이 30주년 기념앨범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진 9월부터 토크쇼와 음악 예능을 중심으로 방송가의 출연제안이 쏟아졌습니다.
방송출연이 거의 없던 임재범은 이미지 소모가 없어, 늘 ‘신선한 인물’을 찾는 방송가의 구미에 맞는 섭외 1순위다.
특히 임재범이 올해 데뷔 3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어 방송 출연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만, 임재범은 방송가의 요청에 ‘묵묵부답’인 상황입니다.
임재범 측 관계자는 6일 “지상파와 케이블 등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고 있지만, 임재범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3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애프터 더 선셋: 화이트 나잇’은 2015년 10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2회 공연을 시작으로 인천 남동 체육관, 부산 벡스코, 울산 동천체육관, 광주 염주체육관, 일산 킨텍스, 대구 엑스코, 수원 실내체육관, 성남아트센터, 의정부 실내체육관, 그리고 서울 세종문화회관 등 2016년 2월 14일까지 총 10개 도시에서 14회 동안 진행된 투어는 성황리에 종료되었습니다.
전국 콘서트 투어는 공연 시장의 전체적 불황에도 불구, 객석 점유율 98%를 보여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임재범, 30주년 전국투어 5개월 대장정 마무리.
객석 점유율 98%.
9. 사별, 그리고 7년만의 복귀
10. 가족사
배우이자 가수인 손지창과 이복형제다.
임재범의 아버지인 임택근 전 MBC 아나운서가 외도로 인해 낳은 자식이 임재범과 손지창입니다.
손지창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보면 그 아픔이 어땠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손지창은 방송을 통해 아버지와 재회.
방송분만 보면 삼부자가 완벽하게 화해한 듯 보이지만, 이후 손지창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건 방송사의 편집이며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생각도 없고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라고.
여기서 임재범은 임택근의 세컨드, 손지창은 임택근의 써드의 자식입니다.
사실 족보가 너무 꼬여서 정확한 정의가 불가능합니다.
임재범도 손지창도 둘 다 임택근의 서자다.
임택근은 둘 다 바람피워 얻은 자식이고 그나마 임재범은 이혼 과정을 이용해서 어찌어찌 출생 사유를 숨겨서 임씨 성을 물려줬지만 손지창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해 이리저리 떠넘기다가 결국 손윗동서에게 떠넘겨서 그 동서의 성인 '손씨'로 호적에 올라가게 만들었습니다.
임택근은 본처에게 한 행동이 개차반이어도 너무 개차반인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위의 발언을 봐서 손지창도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가 토크쇼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대학교 합격한 후에 첫 등록금만은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기 때문에 찾아간 적은 있었는데 문자 그대로 넌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문전박대했던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나중에도 손지창은 '나는 손지창이지 임지창이 아닙니다.
' 하고 밝혔고, '나와 오연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임씨로 개명할 마음도 없습니다.
'고 밝혔습니다.
애초에 손지창에게 손씨라는 성을 준 사람(호적상의 아버지)은 손지창의 이모부다.
손지창은 이모부를 아버지로 생각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자식을 얻지 못한 아버지 임택근은 이 사이 이미 바람을 피워 사생아인 임재범, 손지창을 얻었습니다.
이후 임재범은 한 살 때 생모가 일본으로 떠나 어쩔 수 없이 키웠지만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숨겨 키웠다.
이후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을 한 뒤에야 호적에는 올려줬다고 합니다.
임재범도 자신의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즉 첫 번째 부인하고 결혼 생활 중에 제3의 여인(임재범의 생모)과 바람을 피워 자식을 낳았는데 호적에는 또다시 별개인 두 번째 부인 아들로 들어가 있다(…).
이딴 출생의 비밀은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에도 나오기 힘들 듯.
하지만 손지창을 끝까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다가, 이런저런 소문이 나게 되고 기자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서 '아들아!'라며 감동의 재회 따위를 연출합니다.
아버지인 임택근이 MBC의 유명 아나운서 출신 간부에다가 파워까지 있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런 연출에 응했던 손지창이지만 이후 '그건 다 연출이고 난 그 인간 아버지로 인정할 생각 없다'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래도 임재범과 손지창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손지창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말하길 더 블루 재결합을 했을 때 손지창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준 사람이 임재범이었다고 합니다.
제수 오연수도 임재범의 팬인 듯.
관련 기사하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은 '두 아들을 둬서 행복하다' 따위의 발언을 하고 앉았으니 임재범과 손지창만 불쌍합니다.
정작 두 아들들은 각자의 2세를 위해 호적 정리를 할 예정이라고.
이미 손지창의 혈연 관계가 임택근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습니다.
단, 아버지 임택근이 최근 "임재범이랑 교류 안 하고 산 지 몇 년이 됩니다.
"라고 인터뷰한 것으로 봐선 호적정리 유무를 떠나 거의 담 쌓고 사는 사이임은 분명합니다.
이후 승승장구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임재범 본인과 아버지 임택근, 이복동생 손지창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놓았습니다.
동생인 손지창의 경우 자주 연락하며 만나고 있는 듯 하며 삼촌인 손지창이 임재범의 딸을 무척 귀여워한다는 듯.
임재범은 한동안 자신을 무녀독남으로 알고 있었으나 집안어른들을 통해 '지창'이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손지창이 스타가 되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자 그것을 보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에게 '내게 숨겨진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지창이가 아무래도 내 동생인 거 같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기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는데, 왜냐하면 기자는 손지창에게 그 이야기를 이미 듣고 알고 있었기 때문.
결국 그 기자를 통해 이복형제가 만나게 되는데, 손지창은 임재범을 만나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워하는 감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형인 임재범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러나 만나서 실상을 알게 된 후 서로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알고 원망의 감정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 서로 나이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가슴의 상처도 적잖이 아문 듯.
아버지인 임택근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
손지창과는 다르게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었다고는 하나 아버지에게 대놓고 '아버지는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100점 짜리일지 모르나 집에서는 0점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나중 가선 임택근과 더 이상 왕래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임택근은 이전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당한 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왔습니다.
또한 담석 수술 등으로 이미 몸이 크게 약해진 상태.
이런 아버지에게 임재범이 메세지를 날렸는데, '아버지가 지금 굉장히 힘들고 어려우며 몸과 마음도 많이 망가진 것은 알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라며 냉정하게 채찍을 들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임재범이 임택근에게 쌓인 한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듯.
그래도 언젠가 아버지를 용서해야 될 때가 올 것 같다고 담담히 털어놓기는 했습니다.
손지창과의 이복 형제이며, 그 아버지가 임택근 아나운서라는 점이 최초로 밝혀질 당시 한 TV 연예뉴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도 임재범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난 일이고, 그분(임택근)의 인생에 대해서 어찌되었건 자식이 이렇다 저렇다 제 3자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20년 1월 11일 사망한 임택근의 빈소를 상주로서 지켰습니다.
2022년 6월 청음회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크게 슬퍼했다고 하는 걸 보면, 임택근에 대해 아버지로서 인정하는 마음도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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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의 아버지인 임택근 전 MBC 아나운서가 외도로 인해 낳은 자식이 임재범과 손지창입니다.
손지창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보면 그 아픔이 어땠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손지창은 방송을 통해 아버지와 재회.
방송분만 보면 삼부자가 완벽하게 화해한 듯 보이지만, 이후 손지창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건 방송사의 편집이며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생각도 없고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라고.
여기서 임재범은 임택근의 세컨드, 손지창은 임택근의 써드의 자식입니다.
사실 족보가 너무 꼬여서 정확한 정의가 불가능합니다.
임재범도 손지창도 둘 다 임택근의 서자다.
임택근은 둘 다 바람피워 얻은 자식이고 그나마 임재범은 이혼 과정을 이용해서 어찌어찌 출생 사유를 숨겨서 임씨 성을 물려줬지만 손지창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해 이리저리 떠넘기다가 결국 손윗동서에게 떠넘겨서 그 동서의 성인 '손씨'로 호적에 올라가게 만들었습니다.
임택근은 본처에게 한 행동이 개차반이어도 너무 개차반인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위의 발언을 봐서 손지창도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가 토크쇼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대학교 합격한 후에 첫 등록금만은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기 때문에 찾아간 적은 있었는데 문자 그대로 넌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문전박대했던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나중에도 손지창은 '나는 손지창이지 임지창이 아닙니다.
' 하고 밝혔고, '나와 오연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임씨로 개명할 마음도 없습니다.
'고 밝혔습니다.
애초에 손지창에게 손씨라는 성을 준 사람(호적상의 아버지)은 손지창의 이모부다.
손지창은 이모부를 아버지로 생각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자식을 얻지 못한 아버지 임택근은 이 사이 이미 바람을 피워 사생아인 임재범, 손지창을 얻었습니다.
이후 임재범은 한 살 때 생모가 일본으로 떠나 어쩔 수 없이 키웠지만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숨겨 키웠다.
이후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을 한 뒤에야 호적에는 올려줬다고 합니다.
임재범도 자신의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즉 첫 번째 부인하고 결혼 생활 중에 제3의 여인(임재범의 생모)과 바람을 피워 자식을 낳았는데 호적에는 또다시 별개인 두 번째 부인 아들로 들어가 있다(…).
이딴 출생의 비밀은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에도 나오기 힘들 듯.
하지만 손지창을 끝까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다가, 이런저런 소문이 나게 되고 기자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서 '아들아!'라며 감동의 재회 따위를 연출합니다.
아버지인 임택근이 MBC의 유명 아나운서 출신 간부에다가 파워까지 있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런 연출에 응했던 손지창이지만 이후 '그건 다 연출이고 난 그 인간 아버지로 인정할 생각 없다'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래도 임재범과 손지창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손지창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말하길 더 블루 재결합을 했을 때 손지창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준 사람이 임재범이었다고 합니다.
제수 오연수도 임재범의 팬인 듯.
관련 기사하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은 '두 아들을 둬서 행복하다' 따위의 발언을 하고 앉았으니 임재범과 손지창만 불쌍합니다.
정작 두 아들들은 각자의 2세를 위해 호적 정리를 할 예정이라고.
이미 손지창의 혈연 관계가 임택근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습니다.
단, 아버지 임택근이 최근 "임재범이랑 교류 안 하고 산 지 몇 년이 됩니다.
"라고 인터뷰한 것으로 봐선 호적정리 유무를 떠나 거의 담 쌓고 사는 사이임은 분명합니다.
이후 승승장구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임재범 본인과 아버지 임택근, 이복동생 손지창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놓았습니다.
동생인 손지창의 경우 자주 연락하며 만나고 있는 듯 하며 삼촌인 손지창이 임재범의 딸을 무척 귀여워한다는 듯.
임재범은 한동안 자신을 무녀독남으로 알고 있었으나 집안어른들을 통해 '지창'이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손지창이 스타가 되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자 그것을 보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에게 '내게 숨겨진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지창이가 아무래도 내 동생인 거 같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기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는데, 왜냐하면 기자는 손지창에게 그 이야기를 이미 듣고 알고 있었기 때문.
결국 그 기자를 통해 이복형제가 만나게 되는데, 손지창은 임재범을 만나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워하는 감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형인 임재범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러나 만나서 실상을 알게 된 후 서로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알고 원망의 감정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 서로 나이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가슴의 상처도 적잖이 아문 듯.
아버지인 임택근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
손지창과는 다르게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었다고는 하나 아버지에게 대놓고 '아버지는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100점 짜리일지 모르나 집에서는 0점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나중 가선 임택근과 더 이상 왕래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임택근은 이전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당한 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왔습니다.
또한 담석 수술 등으로 이미 몸이 크게 약해진 상태.
이런 아버지에게 임재범이 메세지를 날렸는데, '아버지가 지금 굉장히 힘들고 어려우며 몸과 마음도 많이 망가진 것은 알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라며 냉정하게 채찍을 들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임재범이 임택근에게 쌓인 한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듯.
그래도 언젠가 아버지를 용서해야 될 때가 올 것 같다고 담담히 털어놓기는 했습니다.
손지창과의 이복 형제이며, 그 아버지가 임택근 아나운서라는 점이 최초로 밝혀질 당시 한 TV 연예뉴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도 임재범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난 일이고, 그분(임택근)의 인생에 대해서 어찌되었건 자식이 이렇다 저렇다 제 3자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20년 1월 11일 사망한 임택근의 빈소를 상주로서 지켰습니다.
2022년 6월 청음회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크게 슬퍼했다고 하는 걸 보면, 임택근에 대해 아버지로서 인정하는 마음도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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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야기들
- 그가 한 말 중 "폼 잡을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해라.", "즐기면 즐기는 거지 판단하는 게 아니거든요… 음악은…"이 있습니다.
- 연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배우가 될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1991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 기자 역으로 출연했는데, 은근히 비중이 있는 조연으로 나옵니다. 의외로 연기 발성이 상당히 좋습니다. 첫연기 도전 치고는 내용이 꽤 하드한데, 여주인공 김성령을 겁탈하려다가 폭사한다(...).
- 영어 실력이 상당한데, 김도균과 영국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영어 한마디도 못했으나 영국 생활 6개월 만에 생활영어를 마스터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참고로 임재범은 영어 발음이 굉장히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마 듣는 귀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닐까. 김도균이 아궁이에 출연했을 때, "미국인이 임재범의 영어를 들으면 네이티브 영국인으로 생각할 정도로 영어 발음과 실력이 뛰어납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영어를 쓰는 장면들을 보면 영국영어뿐 아니라 미국식 영어에 미국 남부식 영어, BBC 아나운서 흉내, 인도식 영어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있는 영어 억양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흉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원어민들을 상대로 영어로 자연스럽게 농담까지 칠 정도이니 영어 실력에는 도가 튼 셈. 외국어 성대모사 영상국내 상위 영어학습 채널 4명 중 한 명인 영어 알려 주는 남자(영알남)은 완벽에 가까운 영국영어 구사하는 임재범 영어 실력 (영어발음 장인...)이란 제목으로 임재범의 영어 발음 실력에 대해 다루기도 했습니다.
- 한국 소몰이창법의 창시자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관련 기사 관련 기사 수요 예술무대에서 '저도 웃긴 놈이에요. 헤비메탈하다가 소몰이 창법인지 소머리국밥인지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했잖아요? 제임스 잉그램이 헤비메탈하는 거 봤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창법은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밴드하다가 발라드 가수로 바꾼 마이클 볼튼이 있기는 합니다. 사실 솔로 데뷔 후 한국의 마이클 볼튼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 젊은 시절 헤비메탈 보컬로서의 자신을 회고하길 느낌은 화이트 스네이크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닮고 싶었고, 중음은 DIO의 로니 제임스 디오를, 고음은 그레이엄 보넷을 염두에 두고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방송과 라디오, 팬카페 등에서 직접 언급한 것들을 종합해보면 그냥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가진 보컬들은 다 따라해봤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방송에서 모창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점이 많이 묻어납니다. 애초에 펑크록 보컬에 대해서 언급하는가 하면, 승승장구에선 잠적하던 시절에 이니그마 앨범을 들고 산에 들어갔던 얘기를 하는등 기본적으로 음악을 폭넓게 엄청 많이 듣습니다. 같은 방송에서 트로트를 평소에 자주 듣고 부른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또한 훗날 헤비메탈 씬을 그대로 잇지 못하고 자신은 변절한 거 같아서,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 <고해>는 한때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멋있어 보이고 싶을 때 부르는 노래 1위였습니다. 사랑 고백용으로도 엄청 쓰였습니다. 다만 요즘은 곡이 나온지도 오래 돼서 예전보단 선호도가 낮고, 오히려 여자들이 '남자들이 부르면 싫은 노래'로 뽑고 있다(...). 고해란 곡 자체가 마초적, 남성 시각적인 분위기가 짙어서 애초부터 곡 자첼 별 감흥없어 하는 사람도 있고, 곡보단 보컬 빨로 노래들이 실제보다 더 좋게 들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임재범의 창법은 독특하게도 엄청난 성량을 보여주지만 가성의 사용 빈도가 굉장히 높은 괴악한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에 흉내내기가 매우 까다로운 스타일입니다. 결과적으로 임재범 노래는 노래방에서 웬만하면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
- 그래서 남자들이 부르면 여자들이 싫어하는 노래의 가수로 유명합니다. <너를 위해> <고해> 등이 대표적. 그 이유는 노래말이 애절해서 마초적 판타지를 자극하기 때문에 남자들이 술마시고 즐겨 지르는 노래지만 남자가 부르긴 다소 음역도 높고 임재범 만한 가창력이 없으면 여자들에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허세로 느껴지기 때문에 라고.
- 팬카페에 올라온 인증으로 봤을 때 와우 유저인 것 같습니다. 콘서트에서 인증했습니다.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는 상태 사용 캐릭터는 트롤남캐(…). 이소라에게 낚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와갤에서 그를 어떻게 찾아낸 후 가방을 주는 훈훈한 모습이 일간베스트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당시에 모종의 이유로 삭발을 했는데, 이 때문에 삭발을 고민한 남성들도 있었다고. 허나 잘 생각해 보면 결국 임재범이 잘생겼기 때문에 멋있게 보이는 거다(...). 이 글을 보는 남자들은 삭발하는 건 잘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미 했다면? ▶◀애도 군대 가면 강제로 할 텐데 뭐하러
- 나는 가수다로 인기를 얻으면서 현재 암투병 중인 연극배우 송남영의 남편이라는 점과 슬하에 10살짜리 지수란 딸이 있는 사실도 부각이 됐습니다. 특히, 나는 가수다 인터뷰 도중 투병 중인 아내가 남편이 1위를 했다는 사실에 전화상으로 매우 좋아하자 10년 만에 아내가 행복해 했다며, 눈시울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인터뷰 속에서 묻어납니다. 특히, 지하철에서 시비를 걸던 남자가 급기야 딸을 울리자 내 딸을 울리다니 하며 야수처럼 격변했다는 일화가 인터넷 카페에서 공개된 적이 있는데 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이미 2004년경 5집의 홍보 때 그 기미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뜬끔없이 딸의 사진을 내보이며 딸이 명령하는대로 따르고 있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야수 돌변 사건은 어찌 보면 예견된 사건인 셈. 고현정쇼에 출연하여 이때 상황을 자세히 밝힌 바 있습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8242345092210
- MBC 나도 가수다에서 개그맨 정성호가 정재범이라는 가명으로 임재범을 패러디한 개그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성호에게 임재범이 직접 만나서 막걸리 한잔 하자고 했는데, 맞을까봐 무서워서 안 갔다고 밝혔다(…). 물론 이건 개그고, 실제로 임재범이 나도 가수다 패러디 무대에 대해 직접 조언을 해주는 등, 두 사람은 연락도 하고 굉장히 많이 친해진 모양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정성호의 인터뷰를 참조해보자.
- 그의 콘서트 때 화환 중에 섞인 것들이 있습니다.
-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때에는 여러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예능감을 발산했습니다. 사실 사석이라던지 자신의 콘서트에서도 자주 성대모사를 한다고 하며 임재범과 친분이 있는 탁재훈의 증언에 의하면 소싯적 임재범과 주변 사람들이 모여 결성한 사교 모임 '주둥아리 클럽' 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존재감을 자랑했었다고
- 해피투게더에서 박수홍의 진술에 의하면, 1990년대 초에 방송국 근처 여의도 락카페에 놀러 간 김수용이 임재범과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의도에 김수용이 나를 자주 데려가던 카페가 있습니다. 어느날 그 카페에서 김수용과 함께 있는데 김수용이 자꾸 한 곳만 응시하더라. 거기 임재범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는 "둘이 눈싸움을 하고 있더라. 김수용이 복화술로 '오늘 관짜라'라며 중얼거렸고, 그때 임재범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눈)깔아'라고 말하더라. 정말 무서웠다"고 했는데, 김수용이 기죽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버텼지만 계속 노려보던 임재범이 자기 팔에다 담배를 끄자,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네요. 죄송했습니다. 제가 여의도에서 학교를 나온 여의도 출신인데요. 그래서 여의도에 어릴 때 친구들이 많아서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제 옛날 친구랑 닮으셔서 제가 잘못 알아본 것 같네요. 죄송하게 됐습니다."라고 길게 주절주절 변명하면서 사과하자, 임재범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끝났다고 합니다. 김수용 본인이 첨언한 바로는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합니다.
- SBS 좋은아침 출연에서 아내가 본인을 "아줌마"라고 부른다고 말했습니다.
- 그리고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 듯 합니다. 잠적했을 때는 이니그마의 음악을 일 년 내내 들었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고, 나는 가수다에서도 대기실에 있던 내내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주다스 프리스트의 월드 투어 서울 공연에 게스트로 출장해 Rock in Korea와 Paradom을 열창했습니다.
- 2011년 7월 8일에 방송된 MBC 스페셜 -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 보컬 유현상, 시나위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신대철,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그리고 부활 초대 보컬이자 시나위 2집 보컬인 김종서, 부활 5대 보컬인 박완규, 그리고 YB의 리더인 윤도현과 함께 출연했는데 사실 중심이 1980년대 한국 록을 주름 잡았던 3대 록밴드인 백두산, 시나위, 부활에 맞춰져 있던 만큼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정작 한국 록의 스피릿을 결정지은 들국화와 한국 록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신중현에 대한 언급은 왜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중현은 아들 신대철이 나왔으니 좀 나은 거 아닌가?? orz
- 임재범의 팬카페는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약칭 임알락)'으로, 임재범과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동호회 성격을 띤 다음 카페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임재범은 자신의 팬카페를 2번 탈퇴했다가 결국 2번 복귀한 이색적인 경험의 소유자입니다. 처음은 나가수 촬영 도중 맹장 수술로 하차한 과정에서 탈퇴한 것으로 2일 만에 복귀했습니다. 두 번째는 루리웹 만지소 인증사건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터진 일이기에 그 사건의 임재범 버젼에 가까웠다.
- 임재범 갤러리에 임재범이 직접 글을 남겼는데 문제는 (디시 유저들 입장에서) 사칭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일명 '유동닉'이었고, 이에 유저들이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인증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분개한 임재범은 "가짜로 오인받아 난감하다(원문 : 여러분들은 웃기세요? 제가?). 인터넷상에서 어느 누구라도 그런 욕을 해도 괜찮은 거냐"며 "저라고 욕을 할 줄 몰라 안 하겠느냐, 음악이 여러분에게 끼친 영향이 그거밖에 안 되는 거냐"라는 글을 남기면서 2011년 10월 24일 팬카페를 탈퇴하게 됩니다. 해당 글의 글씨체(궁서체)와 글씨크기(36p)를 보면... 디시를 처음 접한 일반인들의 흔한 반응 그리고 이는 신문기사화 되어서 디시인사이드가 얼마나 막장인가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습니다. 결국 갤주를 물어뜯은 개 꼴이 되어버린 임재범 갤러리와 팬카페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1주일 만인 당년 10월 31일에 팬카페에 복귀한 임재범은 상처를 준 것은 사과하지만 탈퇴라는 강한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밝히며 복귀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임재범 팬덤에게는 최대의 흑역사.
- 2013년 2월 23일, 동년 10월 26일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여전한 포스를 보여줬습니다.
- 미국의 외교관으로 전 주한 미국대사이자 현직 주필리핀 미국대사인 성 김과는 사촌형제지간입니다.
- 67년 2월생인 신대철과 같은 학교 동창 사입니다. 신대철은 2017년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108회에서 임재범이 나이가 한참 위이지만, 같은 동기라서 친구로 지냈다고 합니다.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신대철 나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아마 이런 사연으로 주변 지인들과 임재범 사이의 호칭이 애매해진 부분에서 의문을 품는 듯 합니다. 블랙신드롬의 보컬 박영철은 몇년 전 자신의 자전적 수필에서 임재범으로부터 ‘이런 이유 탓에 주민등록증의 생년과 실제 태어난 해가 다르다는 요지의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링크 가족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아버지 때문에 족보가 꼬인 게 큰 듯. 최근 고교급식왕에서 호적상으론 68년생이지만 실제론 66년생인 백종원이 '재범이와 친했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같은 해 입학한 동기동창이라 나이와 상관없이 친한 친구 사이였던 듯. 65년생 전 국회의원 최재성도 임재범 1년 선배이지만 임재범과 돈독한 친분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65년생 김종서는 임재범을 깍듯하게 형님이라고 부릅니다.시나위 보컬 임재범과 김종서
- 시나위를 탈퇴하고 제52보병사단의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 후 '다시 태어난 거인' 콘서트 무대에서 "난 도시락 특공대인 방위 출신이다"라며 유쾌한 입담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 FT아일랜드의 이홍기를 방송에서 자신의 양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아끼는 모양입니다. 2011년 MBC 예능 프로그램 바람의 실려에서 함께 미국 버클리 음대로 떠나 공연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이홍기가 고해를 열창하였고 그것을 보고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고 합니다.그 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듯. 나이 차이도 아빠와 아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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