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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대한민국의 국가유공자
송해 宋海 | Song H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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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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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宋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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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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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 송씨 (恩津 宋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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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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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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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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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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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재령군 재령면
(現 황해남도 재령군 재령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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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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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8일 (향년 9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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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삼성아파트 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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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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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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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58cm, 54kg, 250mm, A형
|
가족
|
아내 석옥이(1934년 3월 3일 ~ 2018년 1월 20일)
장녀 송숙경 | 차녀 송숙연 장남 송창진(1966년 ~ 1986년) 사위 양희천 외손주 김혜림, 양정우, 양정하 |
학력
|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 /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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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
대한민국 육군본부 통신병 만기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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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
|
참전유공자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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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
화관문화훈장 (2001년)
보관문화훈장 (2003년) 은관문화훈장 (2014년) 기네스 세계기록 (2022년) 금관문화훈장 (2022년, 추서) 대통령표창 2회 KBS 한국방송 명예사원 |
종교
|
불명
|
데뷔
|
창공악극단 (1955년)
|
별명
|
국민 MC, 국민 오빠, 국민 아버지, 국민 할아버지, 딴따라, 해형
|
취미
|
운동, 목욕
|
좋아하는 음식
|
소주, 우거지 국밥, 소고기, 된장찌개, 더덕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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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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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cm, 54kg, 250mm, A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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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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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석옥이(1934년 3월 3일 ~ 2018년 1월 20일)
장녀 송숙경 | 차녀 송숙연 장남 송창진(1966년 ~ 1986년) 사위 양희천 외손주 김혜림, 양정우, 양정하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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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 /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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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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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본부 통신병 만기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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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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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유공자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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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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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문화훈장 (2001년)
보관문화훈장 (2003년) 은관문화훈장 (2014년) 기네스 세계기록 (2022년) 금관문화훈장 (2022년, 추서) 대통령표창 2회 KBS 한국방송 명예사원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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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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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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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악극단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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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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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MC, 국민 오빠, 국민 아버지, 국민 할아버지, 딴따라, 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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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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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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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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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우거지 국밥, 소고기, 된장찌개, 더덕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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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딩동댕) 송해: 전국~! 관객: 노래자랑!송해의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멘트 1 1, 2"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정중하게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한 번 크게 안녕하세요~""저 어디 위에 계신 분들, 저 어디 밑에 계신 분들 안녕하세요~"송해의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멘트 2대한민국의 방송인.
본래는 성악을 전공한 가수였지만, 코미디언으로 연예계에 데뷔하여 코미디언 활동을 더 많이 했기에 사실상의 본업은 코미디언이며, 1988년 61세부터는 MC로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한 번 크게 안녕하세요~""저 어디 위에 계신 분들, 저 어디 밑에 계신 분들 안녕하세요~"송해의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멘트 2대한민국의 방송인.
본래는 성악을 전공한 가수였지만, 코미디언으로 연예계에 데뷔하여 코미디언 활동을 더 많이 했기에 사실상의 본업은 코미디언이며, 1988년 61세부터는 MC로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2. 생애
송해는 생전에 방송사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한 덕분에, 그의 생애에 대해 본인이 직접 출연해 이야기한 방송 자료, 인터뷰 자료가 꽤 많이 누적된 편입니다.
예능 포맷의 프로그램 중에 직접 그가 출연하여 그의 인생을 돌아본 작품으로는 힐링캠프(2014, SBS), 나를 돌아봐(2015, KBS), 대화의 희열(2018, KBS), 라디오스타(2021, MBC) 등이 있고, 다큐멘터리로는 실향민으로서의 아픔을 언급한 송해야 고향가자(2019, MBN)가 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송해 1927(2021)이 있고, 그의 일생을 전기 형태로 극화한 예로는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2022, KBS)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아침마당 출연을 자주 한 편으로, 패널로 출연해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기사 자료로 전해지는 예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령자의 기억은 명확치 않거나 옛 시대의 저장매체 부족 때문에 검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후대 사람이 그들의 생전 기록을 정리할 때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연예인들은 인터뷰에서 자신을 추켜세우거나 예능적 재미를 주려고 과장을 섞기도 합니다.
그러나 송해의 인생에 대한 회고는 비교적 명확하고 일관성 있어서 그런 문제가 적은 편입니다.
물론 출생 연도에 대한 부분이나 몇몇 에피소드는 그의 기억의 한계 때문이거나 잘못된 기록을 방치한 때문이거나 기자 등 인터뷰어가 잘못 받아적은 탓에 오류가 몇차례 발견 되었으나, 객관적 자료나 교차검증을 가능케 하는 타인의 인터뷰 등이 많아서 오류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습니다.
이하 서술은 위에 언급된 자료나 뉴스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예능 포맷의 프로그램 중에 직접 그가 출연하여 그의 인생을 돌아본 작품으로는 힐링캠프(2014, SBS), 나를 돌아봐(2015, KBS), 대화의 희열(2018, KBS), 라디오스타(2021, MBC) 등이 있고, 다큐멘터리로는 실향민으로서의 아픔을 언급한 송해야 고향가자(2019, MBN)가 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송해 1927(2021)이 있고, 그의 일생을 전기 형태로 극화한 예로는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2022, KBS)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아침마당 출연을 자주 한 편으로, 패널로 출연해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기사 자료로 전해지는 예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령자의 기억은 명확치 않거나 옛 시대의 저장매체 부족 때문에 검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후대 사람이 그들의 생전 기록을 정리할 때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연예인들은 인터뷰에서 자신을 추켜세우거나 예능적 재미를 주려고 과장을 섞기도 합니다.
그러나 송해의 인생에 대한 회고는 비교적 명확하고 일관성 있어서 그런 문제가 적은 편입니다.
물론 출생 연도에 대한 부분이나 몇몇 에피소드는 그의 기억의 한계 때문이거나 잘못된 기록을 방치한 때문이거나 기자 등 인터뷰어가 잘못 받아적은 탓에 오류가 몇차례 발견 되었으나, 객관적 자료나 교차검증을 가능케 하는 타인의 인터뷰 등이 많아서 오류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습니다.
이하 서술은 위에 언급된 자료나 뉴스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3. 데뷔 이전
본인이 직접 언급하던 바에 따르면 송해는 1927년 4월 27일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재령평야를 나무리벌이라는 좋은 쌀이 나는 옥토로 기억하였습니다.
실제로 나무리가 먹고 입고 쓰고도 남는다는 뜻이라 할 만큼 송해의 어린 시절에는 김소월이 '나무리벌 노래'라는 시에서 언급할 정도로 한반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로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고 전해지며,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다고 합니다.
윤극영의 〈반달〉 같은 노래를 어렸을 때 불렀다고 합니다.
14살 때부터 공연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이 있었는데, 형은 자신이 해주음악전문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며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위로 형제가 더 있었지만 영아사망률이 높던 시기라 숨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소상인이기에 이사를 많이 했는데, 이 과정에서 결석을 많이 하여 소학교는 남들보다 2~3년 늦게 나왔다고 합니다.
소학교를 마치고 재령제2중학교를 나왔다고 합니다.
1949년 황해도 해주음악전문학교에 만 22세 나이로 그의 끼를 눈여겨 보며 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어머니의 영향 하에 입학해서 성악과에 들어가 성악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월남 후 남한에서 전공을 살려 방송인의 삶을 산 계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경연대회를 했는데, 그때마다 합창단원으로 평양의 모란봉극장 무대에 섰다고 합니다.
스스로 이념이나 분단 등을 잘 몰랐던 때로 언급하며, 예술이 좋았고, 평생 그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터질 때까지 누가 누구의 편을 드는지도 파악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재령평야를 나무리벌이라는 좋은 쌀이 나는 옥토로 기억하였습니다.
실제로 나무리가 먹고 입고 쓰고도 남는다는 뜻이라 할 만큼 송해의 어린 시절에는 김소월이 '나무리벌 노래'라는 시에서 언급할 정도로 한반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로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고 전해지며,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다고 합니다.
윤극영의 〈반달〉 같은 노래를 어렸을 때 불렀다고 합니다.
14살 때부터 공연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이 있었는데, 형은 자신이 해주음악전문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며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위로 형제가 더 있었지만 영아사망률이 높던 시기라 숨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소상인이기에 이사를 많이 했는데, 이 과정에서 결석을 많이 하여 소학교는 남들보다 2~3년 늦게 나왔다고 합니다.
소학교를 마치고 재령제2중학교를 나왔다고 합니다.
1949년 황해도 해주음악전문학교에 만 22세 나이로 그의 끼를 눈여겨 보며 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어머니의 영향 하에 입학해서 성악과에 들어가 성악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월남 후 남한에서 전공을 살려 방송인의 삶을 산 계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경연대회를 했는데, 그때마다 합창단원으로 평양의 모란봉극장 무대에 섰다고 합니다.
스스로 이념이나 분단 등을 잘 몰랐던 때로 언급하며, 예술이 좋았고, 평생 그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터질 때까지 누가 누구의 편을 드는지도 파악을 못했다고 합니다.
4. 6.25 전쟁과 월남
하지만 학업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이듬해 6.
25 전쟁이 터지자 초기에는 고향(재령)에 머물렀는데, 초기에는 당시 구월산 일대에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 국군의 북진 후에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2~3천여명 규모의 패잔병의 약탈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1950년 12월 인민군과 중공군이 남하하던 때 다시 나가려는데, 당시 어머니에게 "얘야, 이번엔 조심해라.
"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걱정 마세요.
"라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는데, 그것이 생전의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조선일보의 6.
25 관련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저 대화를 하고 어머니가 준 가래떡이 마지막으로 집에서 먹은 밥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진주와 포격을 피해 재령에서 남쪽 항구인 해주항으로 피난을 갔다가 보름 정도 걸린 이 길에서 인민군의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피하다 철교에서 떨어져 숨질 뻔했다고 합니다.
1951년, 24세 시절의 송해북한 땅이 되어 버린 해주에서 건너편의 섬인 연평도로 은밀히 나룻배를 타고 도착한 뒤, 연평도에서 LST선에 타면서 부산까지 내려왔습니다.
이때 실향민으로 배 위에서 “바다야 내 갈 길 어디냐”라는 생각에 지금의 이름, 즉, 바다 해(海) 자를 예명이자 아호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훗날 주민등록 체계가 확립되고 나서 그의 본명이 됩니다.
피난선을 타고 도착한 부산항에서 그는 앞 사람만 따라다니다 군에 입대해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말년에도 기억해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인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해 줬는데, 그녀가 바로 그의 부인 석옥입니다.
데뷔 이전의 내용이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송해 역시 6.
25 전쟁 참전용사이므로 국가유공자이며, 그의 사후 장례식장에 국가유공자증이 영정과 함께 진열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5 전쟁이 터지자 초기에는 고향(재령)에 머물렀는데, 초기에는 당시 구월산 일대에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 국군의 북진 후에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2~3천여명 규모의 패잔병의 약탈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1950년 12월 인민군과 중공군이 남하하던 때 다시 나가려는데, 당시 어머니에게 "얘야, 이번엔 조심해라.
"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걱정 마세요.
"라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는데, 그것이 생전의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조선일보의 6.
25 관련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저 대화를 하고 어머니가 준 가래떡이 마지막으로 집에서 먹은 밥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진주와 포격을 피해 재령에서 남쪽 항구인 해주항으로 피난을 갔다가 보름 정도 걸린 이 길에서 인민군의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피하다 철교에서 떨어져 숨질 뻔했다고 합니다.
1951년, 24세 시절의 송해북한 땅이 되어 버린 해주에서 건너편의 섬인 연평도로 은밀히 나룻배를 타고 도착한 뒤, 연평도에서 LST선에 타면서 부산까지 내려왔습니다.
이때 실향민으로 배 위에서 “바다야 내 갈 길 어디냐”라는 생각에 지금의 이름, 즉, 바다 해(海) 자를 예명이자 아호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훗날 주민등록 체계가 확립되고 나서 그의 본명이 됩니다.
피난선을 타고 도착한 부산항에서 그는 앞 사람만 따라다니다 군에 입대해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말년에도 기억해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인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해 줬는데, 그녀가 바로 그의 부인 석옥입니다.
데뷔 이전의 내용이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송해 역시 6.
25 전쟁 참전용사이므로 국가유공자이며, 그의 사후 장례식장에 국가유공자증이 영정과 함께 진열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5. 코미디언으로서의 활동
군 제대 이후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서 연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일인다역을 해야 하는 악극단의 특성상 가수 활동 외에 연기도 하고 무대 MC도 보며 활동했습니다.
라디오 전성시대이던 1960년대엔 선배 코미디언 박시명과 콤비를 이뤄 동아방송 '스무고개' 등에서 청취자들의 웃음을 책임졌습니다.
TV 방송이 시작한 후에는 여러 방송사를 넘나들면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선배 코미디언 박시명이나 후배인 여성 코미디언 이순주와 콤비로 코미디를 했고, 콤비를 하지 않을 때엔 똑똑한 고학력자를 풍자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습니다.
포지션은 만자이 용어로 츳코미다.
배삼룡, 구봉서와 같이 출연한 '그 시절 그 쑈'의 영상, 해당 영상은 2002년에 연기하였습니다.
여러 방송사들 중에서 특히, KBS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듯합니다.
다만,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MC로서의 활동에 집중하여 코미디언으로서의 활약은 뜸해지게 됩니다.
이후 가끔씩 연기하던 코미디 콩트마저도 콤비를 이루었던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박시명, 이순주 등이 모두 활동을 중단하거나 고인이 됨에 따라 자연히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코미디계에서 왕성히 현역으로 활동한 기간은 짧게 잡아도 20~30년은 되었고 전국노래자랑 진행이 성공적인 가장 큰 요인은 그의 이러한 코미디 연기 경력이 탄탄한 기반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코미디 연기 당시 가장 잘 하였던 가벼운 딴죽 걸기, 리액션을 하며 판을 깔아 주는 빌드업 역할은 그의 진행 스타일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활용되었습니다.
그의 진행에서 나오는 익살과 해학은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 전성시대이던 1960년대엔 선배 코미디언 박시명과 콤비를 이뤄 동아방송 '스무고개' 등에서 청취자들의 웃음을 책임졌습니다.
TV 방송이 시작한 후에는 여러 방송사를 넘나들면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선배 코미디언 박시명이나 후배인 여성 코미디언 이순주와 콤비로 코미디를 했고, 콤비를 하지 않을 때엔 똑똑한 고학력자를 풍자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습니다.
포지션은 만자이 용어로 츳코미다.
배삼룡, 구봉서와 같이 출연한 '그 시절 그 쑈'의 영상, 해당 영상은 2002년에 연기하였습니다.
여러 방송사들 중에서 특히, KBS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듯합니다.
다만,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MC로서의 활동에 집중하여 코미디언으로서의 활약은 뜸해지게 됩니다.
이후 가끔씩 연기하던 코미디 콩트마저도 콤비를 이루었던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박시명, 이순주 등이 모두 활동을 중단하거나 고인이 됨에 따라 자연히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코미디계에서 왕성히 현역으로 활동한 기간은 짧게 잡아도 20~30년은 되었고 전국노래자랑 진행이 성공적인 가장 큰 요인은 그의 이러한 코미디 연기 경력이 탄탄한 기반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코미디 연기 당시 가장 잘 하였던 가벼운 딴죽 걸기, 리액션을 하며 판을 깔아 주는 빌드업 역할은 그의 진행 스타일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활용되었습니다.
그의 진행에서 나오는 익살과 해학은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6. 정극 배우 활동
1980년대 당시까지 그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직업은 코미디언이었으나, 그는 이미 1960년대부터 다수의 영화 및 TV 드라마에도 출연하였고, 드라마 주제곡도 부르는 등 (당시 가창 앨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멀티 엔터테이너의 원형(原型)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연예 활동에 비해 정극 연기 경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나 1980년대까지 약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어느 정도 중견 연기자 수준의 필모그래피를 갖췄습니다.
여기에 1990년대 이후로는 전국노래자랑이 소재로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특별출연한 예가 몇 차례 있는데 이를 모두 더하면 20여 편 정도의 정극 연기를 하였습니다.
오랜 연예 활동에 비해 정극 연기 경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나 1980년대까지 약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어느 정도 중견 연기자 수준의 필모그래피를 갖췄습니다.
여기에 1990년대 이후로는 전국노래자랑이 소재로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특별출연한 예가 몇 차례 있는데 이를 모두 더하면 20여 편 정도의 정극 연기를 하였습니다.
7. 가수 활동
1970년, 43세 시절의 송해전국노래자랑 MC로서의 명성이 워낙 높아 다소 조명이 잘 되지 않기는 했으나, 송해의 가수로서의 활동도 대중문화, 특히 중장년층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공로로 고평가를 받습니다.
송해는 가요무대에 자주 출연하여 과거 악극단 시절의 창법과 발성을 고스란히 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나이가 들며 활동이 미약해진 다른 동료 가수들과는 달리 말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함으로써 그 자체로 인간문화재에 준하는 수준의 과거 문화 전승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80세를 훌쩍 넘기고도 단독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가 하면, 2018년 <딴따라>라는 제목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등 나이를 잊은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가 취입한 앨범은 '홍도야 우지마라'와 같은 과거 전통 히트송들을 커버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후에는 본인의 오리지널 곡도 다수 발표하게 되었는데 <나팔꽃 인생>, <유랑청춘>, <내 인생 딩동댕>, <내 고향 갈 때까지> 등의 대표곡을 남겼습니다.
2022년 사망 직전까지도 무대에서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여러 곡의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도 직접 오르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송해는 가요무대에 자주 출연하여 과거 악극단 시절의 창법과 발성을 고스란히 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나이가 들며 활동이 미약해진 다른 동료 가수들과는 달리 말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함으로써 그 자체로 인간문화재에 준하는 수준의 과거 문화 전승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80세를 훌쩍 넘기고도 단독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가 하면, 2018년 <딴따라>라는 제목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등 나이를 잊은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가 취입한 앨범은 '홍도야 우지마라'와 같은 과거 전통 히트송들을 커버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후에는 본인의 오리지널 곡도 다수 발표하게 되었는데 <나팔꽃 인생>, <유랑청춘>, <내 인생 딩동댕>, <내 고향 갈 때까지> 등의 대표곡을 남겼습니다.
2022년 사망 직전까지도 무대에서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여러 곡의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도 직접 오르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8. MC 활동
KBS 2TV 개국특집쇼 'KBS 새가족'의 진행을 맡은 송해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연예계에서 큰 유명세를 얻고 전연령층을 아우르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된 시점은 본격적으로 방송 MC로 활동 범위를 넓힌 이후였습니다.
능수능란한 화술과 진행 능력, 그리고 정확한 발음을 가진 그는 1975년 동양방송이 매일 아침 AM 라디오 채널을 통해 방송하던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의 진행을 맡으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 '송 기사'라는 애칭을 받기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이때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하여 그 제보를 활용한 시스템은 현재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교통방송에 쓰입니다.
'가로수를 누비며'는 매주 일요일 라디오 공개홀에서 공개방송을 열기도 했는데 전국노래자랑과 같이 노래 경연을 했고 이는 훗날 전국노래자랑 진행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86년 아들의 오토바이 교통 사망사고 이후 그 충격으로 한동안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면서 3년 후 1989년에 14년 동안 맡아온 진행자 자리에서 완전히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그는 그의 인생을 대표하는 전국노래자랑으로 한국 방송사에 남을 전설적 활약을 하게 됩니다.
능수능란한 화술과 진행 능력, 그리고 정확한 발음을 가진 그는 1975년 동양방송이 매일 아침 AM 라디오 채널을 통해 방송하던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의 진행을 맡으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 '송 기사'라는 애칭을 받기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이때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하여 그 제보를 활용한 시스템은 현재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교통방송에 쓰입니다.
'가로수를 누비며'는 매주 일요일 라디오 공개홀에서 공개방송을 열기도 했는데 전국노래자랑과 같이 노래 경연을 했고 이는 훗날 전국노래자랑 진행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86년 아들의 오토바이 교통 사망사고 이후 그 충격으로 한동안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면서 3년 후 1989년에 14년 동안 맡아온 진행자 자리에서 완전히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그는 그의 인생을 대표하는 전국노래자랑으로 한국 방송사에 남을 전설적 활약을 하게 됩니다.
9. 전국노래자랑
10. 코로나19 사태 이후 행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방송이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전국노래자랑도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2020년 3월 1일 ~ 2020년 6월 28일까지는 스페셜 방송 다시보기 형식으로 대체되었으며, 2020년 7월 5일부터 다시 하는 녹화는 지방 촬영 대신 스튜디오에서 연령별 노래자랑과 특별판으로 대체했습니다.
2021년 9월 13일, 유튜브 근황올림픽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습니다.
7kg 야윈 모습으로 등장하여 영화 송해 1927을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1년 10월 21일, 전국노래자랑으로 친분이 깊은 악단장 신재동이 진행하는 라이브 '콩자반쇼'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였으며 고령의 나이인지라 1부만 출연하였습니다.
2021년, 94세 시절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송해2022년 1월 31일에는 KBS 2TV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방영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2월 1일에 평소 송해가 본인 다음으로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으면 좋겠다고 밝히던 허참이 간암으로 인해 7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2년에는 코로나19 예방백신을 3차까지 접종했으나 돌연 코로나19(돌파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에 많은 네티즌이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4월부터 정상적으로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하며 MC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떴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MC 복귀 “9일 녹화 참여”2022년 5월 14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습니다.
2022년 5월 15일에 방영한 전국노래자랑(충남 당진시 스페셜로 스튜디오 녹화로 대체)에서 다음과 같은 클로징 멘트를 하였고, 이것이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전국노래자랑에서 한 클로징 멘트가 되었습니다.
요즘 철도 좋고, 여러분들 뭐 오랫동안 시달리고, 답답했습니다.
사실 이 화창한 계절이 돌아왔으니까, 여러분들 활짝 열린 세상 나오셔서 금수강산의 맛을 실컷 보시기 바랍니다.
아, 시간이 다 되었죠? 네, 자 저희들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한 박자 쉬고) 안녕히 계십시오.
송해의 마지막 전국노래자랑 출연이날 보조 MC로 같이 스튜디오 녹화에 참여하였고 클로징 멘트도 함께 한 임수민은 송해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인 6월 8일 KBS 뉴스 패널로 참석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날 녹화일에 송해가 부쩍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이고 멘트 반응도 조금씩 늦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금방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2022년 5월 17일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송해 스스로 “더 이상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프로그램 제작진에 밝혔다고 합니다.
기네스북 인증서 전달식에 참석한 송해2022년 5월 23일 기네스북의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 등재를 기념하는 공식 인증서 전달식에 참석하여 직접 소감을 밝혔고, 이 날까지도 투병 전에 비해서는 부쩍 수척해졌지만 또렷한 발성으로 소감을 밝히는 등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전국노래자랑 제작진 또한 송해의 건강 상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지방 현장 녹화는 어렵더라도 스튜디오 녹화라도 진행하는 식으로 송해의 방송 복귀를 고민하던 상황이었습니다.
2022년 6월, 그가 모델로 출연한 야놀자 앱의 광고가 송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가 광고 촬영을 하기에는 건강상 여의치 않아서, 방송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AI 합성 기술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서울 종로구에 그의 이름을 따 조성된 '송해길'을 거닐고 식사를 하였으며 그 곳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도 정상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대중들은 그가 머지 않아 방송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2020년 3월 1일 ~ 2020년 6월 28일까지는 스페셜 방송 다시보기 형식으로 대체되었으며, 2020년 7월 5일부터 다시 하는 녹화는 지방 촬영 대신 스튜디오에서 연령별 노래자랑과 특별판으로 대체했습니다.
2021년 9월 13일, 유튜브 근황올림픽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습니다.
7kg 야윈 모습으로 등장하여 영화 송해 1927을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1년 10월 21일, 전국노래자랑으로 친분이 깊은 악단장 신재동이 진행하는 라이브 '콩자반쇼'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였으며 고령의 나이인지라 1부만 출연하였습니다.
2021년, 94세 시절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송해2022년 1월 31일에는 KBS 2TV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방영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2월 1일에 평소 송해가 본인 다음으로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으면 좋겠다고 밝히던 허참이 간암으로 인해 7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2년에는 코로나19 예방백신을 3차까지 접종했으나 돌연 코로나19(돌파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에 많은 네티즌이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4월부터 정상적으로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하며 MC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떴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MC 복귀 “9일 녹화 참여”2022년 5월 14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습니다.
2022년 5월 15일에 방영한 전국노래자랑(충남 당진시 스페셜로 스튜디오 녹화로 대체)에서 다음과 같은 클로징 멘트를 하였고, 이것이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전국노래자랑에서 한 클로징 멘트가 되었습니다.
요즘 철도 좋고, 여러분들 뭐 오랫동안 시달리고, 답답했습니다.
사실 이 화창한 계절이 돌아왔으니까, 여러분들 활짝 열린 세상 나오셔서 금수강산의 맛을 실컷 보시기 바랍니다.
아, 시간이 다 되었죠? 네, 자 저희들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한 박자 쉬고) 안녕히 계십시오.
송해의 마지막 전국노래자랑 출연이날 보조 MC로 같이 스튜디오 녹화에 참여하였고 클로징 멘트도 함께 한 임수민은 송해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인 6월 8일 KBS 뉴스 패널로 참석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날 녹화일에 송해가 부쩍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이고 멘트 반응도 조금씩 늦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금방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2022년 5월 17일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송해 스스로 “더 이상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프로그램 제작진에 밝혔다고 합니다.
기네스북 인증서 전달식에 참석한 송해2022년 5월 23일 기네스북의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 등재를 기념하는 공식 인증서 전달식에 참석하여 직접 소감을 밝혔고, 이 날까지도 투병 전에 비해서는 부쩍 수척해졌지만 또렷한 발성으로 소감을 밝히는 등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전국노래자랑 제작진 또한 송해의 건강 상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지방 현장 녹화는 어렵더라도 스튜디오 녹화라도 진행하는 식으로 송해의 방송 복귀를 고민하던 상황이었습니다.
2022년 6월, 그가 모델로 출연한 야놀자 앱의 광고가 송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가 광고 촬영을 하기에는 건강상 여의치 않아서, 방송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AI 합성 기술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서울 종로구에 그의 이름을 따 조성된 '송해길'을 거닐고 식사를 하였으며 그 곳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도 정상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대중들은 그가 머지 않아 방송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1. 사망
12. 예능
연도
|
방송사
|
제목
|
비고
|
1969년 ~ 1972년
|
MBC |
웃으면 복이와요
|
|
1976년 ~ 1980년
|
동양방송 |
고전유모어극장
|
|
1981년 ~ 1985년
|
KBS2 |
코미디출동
|
|
1983년 ~ 1984년
|
유머 1번지
|
||
1984년 ~ 1986년
|
KBS1 |
유모어 극장
|
|
1986년 ~ 1987년
|
KBS 2TV |
명랑소극장
|
|
1987년 ~ 1990년
|
코미디 하이웨이
|
||
1988년 5월 8일
~ 2022년 5월 15일 |
KBS 1TV |
전국노래자랑
|
메인 MC
|
2015년 ~ 2016년
|
KBS 2TV |
나를 돌아봐
|
|
2016년 11월 19일
|
MBC |
쇼! 음악중심
|
|
2017년 5월 28일 ~ 7월 16일
|
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
|
|
|
2020년
|
엠넷 로고 |
부캐선발대회
|
|
2021년 ~ 2022년
|
TV CHOSUN 로고 |
부캐전성시대
|
|
13. 영화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66년
|
요절복통 007
|
주연
|
|
1967년
|
우주괴인 왕마귀
|
조연
|
|
1968년
|
남자 미용사
|
||
단벌 신사
|
|||
어머니는 강하다
|
|||
1969년
|
남편
|
||
내 팔자가 상팔자
|
주연
|
||
신세 좀 지자구요
|
조연
|
||
특등비서
|
|||
1970년
|
구혼 작전
|
주연
|
|
남대여
|
조연
|
||
운수대통 일보직전
|
주연
|
||
2002년
|
울랄라 씨스터즈
|
단역
|
|
2003년
|
동해물과 백두산이
|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역
|
특별출연
|
2013년
|
전국 노래자랑
|
본인 역
|
|
2021년
|
송해 1927
|
14. 드라마
연도
|
방송사
|
방송명
|
배역
|
비고
|
2011년
|
KBS 2TV |
드림 하이
|
본인 역
|
특별출연
|
2015년
|
프로듀사
|
|||
2020년
|
KBS 1TV |
기막힌 유산
|
15. 라디오
연도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1970년대 초반
|
MBC 라디오
|
유공쇼
|
|
1975년 ~ 1989년
|
KBS 라디오서울 |
가로수를 누비며
|
|
16. 광고
- IBK기업은행
- 명인제약 이가탄
- 야놀자
17. 건강보조식품 사기 사건
1996년 11월 8일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 출동》에서 송해가 경로잔치에 참석해 8만 원짜리 건강보조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26만 원에 사도록 부추겼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고(, 카메라 출동 영상), 관련 연예인들과 함께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후 같은 해 12월 7일 불구속 기소된 바 있습니다.
사실 송해보다 선배인 배삼룡, 구봉서와 같은 1세대 방송인들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같은 시기 KBS 추적 60분에서 이상용의 공금 횡령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MBC에서 보복성으로 송해를 건드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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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송해보다 선배인 배삼룡, 구봉서와 같은 1세대 방송인들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같은 시기 KBS 추적 60분에서 이상용의 공금 횡령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MBC에서 보복성으로 송해를 건드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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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16년 사망 루머
고령 방송인의 대명사격 인물이다 보니 사망할 때까지 주기적으로 사망설이 돌았는데, 그중에서도 2016년 12월 30일에 펴진 악성 소문이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송해의 기획사에서 서울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의뢰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송해 측에서는 되려 오래 살란 의미 아니겠냐며 수사 의뢰를 취소해 허위 사망설 유포자를 용서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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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송해의 기획사에서 서울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의뢰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송해 측에서는 되려 오래 살란 의미 아니겠냐며 수사 의뢰를 취소해 허위 사망설 유포자를 용서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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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전국노래자랑 관련
- 전국노래자랑은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일본, 미국, 평양(2003년 8월)에서도 공연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이 가장 멀리 공연을 간 곳은 1995년 8월에 제작된 파라과이 편입니다.
- 평양 공연 당시에 북한에서 그의 6.25 전쟁 참전 경력을 문제 삼아 출입이 어려웠다. 북한에서는 신천군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자경단이나 치안대 활동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송해는 신천군이 아닌 재령군 출신이고, 남하하기 전까지는 적극적인 무장반공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공산당 별동대의 모병을 피하기 위해 피신했지만 해당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좋게 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신천·재령 사건을 미군과 우익의 전쟁 범죄라고 교육시키는데 송해는 공산당의 만행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말입니다. 본인은 월남 그 자체가 북한 입장에서 배신이기에 싫어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2016년 말까지 옥포읍 기세리 옥연지 일대에 송해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원래 이 공원은 옥연저수지를 이용한 단순한 경관 공원으로 조성키로 했으나, 2011년 달성군 명예 군민, 2012년 달성군 명예 홍보대사 위촉 이력이 있는 데다, 부인 석옥이가 이 곳 출신인 점, 달성군은 공원 명칭 및 성명권, 초상권 사용에 대한 협의와 관련, 본인이 최종적인 동의를 해 옴에 따라 공원 착공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송해공원에는 산책로를 비롯해 쉼터, 송해 흉상 등이 들어섰으며 방문객이 산책로를 거닐면 공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송해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송해공원 인근에는 2021년에 개관한 송해기념관이 있으며 기념관에서 마을회관 방향으로 가면 송해 가족 묘소가 있습니다.
- 2016년에 중학교 1학년 학생한테 해형이라는 호칭을 듣자 아버지가 몇 살이시냐 물으니 46살이라는 대답에 송해는 잠시 머뭇거리다 욱하는 바람에 너네 아버지가 46세인데 나 보고 해형?! 해형이라니!라고 꾸짖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조우종은 방송에서 친해진 후에는 실제로 이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할아버지 소리는 싫어했습니다. 과거 오마이걸 승희가 어릴적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했을때 송해 할아버지라고 부르자 "떽!"하고 소리쳤습니다.
- 백세인생이 나온 이후 2016년 경상남도 남해군 편에서 마늘 홍보를 위해 마늘을 들고 나온 출연자에 의해 마늘을 한 알 먹어보고는, 백세인생을 개사해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남해마늘 다 못먹어 못 간다고 전해라~고 가사를 읊었습니다.
- 그의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거쳐 스타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김혜연, 박상철, 홍석천, 송소희, 별, 승희,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등이 있습니다.
- 2008년 경남 거창군 편에 1박 2일 팀(시즌1)이 출연했을 당시 1박 2일 팀이 특별 인기상을 수상했을 때 MC몽이 무대로 올라와 꽃가루를 날리며 세레머니를 하자 "예끼!"라고 소리치며 꾸짖었습니다. 이때 강호동이 송해를 보자마자 그랜절을 올리자 나머지 멤버들도 강호동을 따라 송해에게 그랜절을 올렸습니다.
- 2003년 평양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위해 방북해있는 동안 송해를 담당한 북측 안내원과 친해져 어느샌가 말을 놓고 편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평양노래자랑 종료 후 뒤풀이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와중에, 안내원이 재령을 코 앞에 두고 가지 못한 송해에게 "선생님, (재령에) 가보셔야 거기 안계십니다."며 나름의 위로를 보냈고, 그 말을 오해한 송해가 월남한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죽은 거냐고 묻자, 그 말이 아니라 흐르는 강이든 솟아있는 산이든 동네든 마을이든 52년의 그 세월 동안 모든 것이 다 달라졌다고 대답하며, 송해가 알던 재령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송해는 자신이 월남하고 52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하며, 생전에 다시는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의 평생 소원은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에 다시 와서 전국 노래자랑을 여는 것이었으나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 일상 생활 및 나이, 연예계 관련
- 생전 자동차, 휴대 전화, 큐 카드(대본 등이 적힌 종이) 이 3가지는 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개인 차는 없지만, 대형/특수차량 면허는 취득했다고 나를 돌아봐에서 밝혔습니다. 자동차가 없는 대신 'BMW'를 이용한다고 방송에서 밝혔는데 자동차 브랜드가 아닌 BUS, METRO, WALKING을 뜻하며 대중교통 또는 걸어서 이동한다는 의미다. 노년층들 사이에선 아직도 수요가 많다는 피처폰조차도 가지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나를 돌아봐에서 이경규가 자신이 만든 영화 전국노래자랑에 섭외하는데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섭외 혹은 연락하는 것보다 지하철에서 보는게 더 쉽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큐 카드는 교감, 소통을 위해 갖지 않는다고 했으며 몇 년 전의 방송에서 촬영이 있는 곳의 전날에 미리 내려가 그 동네 목욕탕에서 주민들과 함께 목욕하면서 교감을 가진다고 밝혔습니다. 예외로 시상식을 진행할 때는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큐카드를 고의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큐카드 자체가 정형화된 대본인데 그가 진행한 전국노래자랑에서는 누가 출연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진행을 출연자에 맞게 능동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송해의 철학이 출연자와 소통하고 출연자에 맞춰 본인이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이 출연자에 대한 예우와 존중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고의로 큐카드를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 한 가지 더 없는 것을 말하자면 안티팬으로, 인터넷 투표에서 '안티팬 가장 없는 연예인'으로 조용필, 현숙과 함께 꼽혔다고 합니다. 실제로 인터넷 기사나 유튜브 등지에서 송해를 비난하는 댓글을 썼다가는 무지막지한 비추천과 함께 답글로 욕을 먹습니다. 송해를 욕한 후배 연예인은 없지만 폐를 끼친 연예인이 있는데 이선영이 송해 앞에서 후배들을 비난하다 분노한 이순재에게 개박살났는데, 동료 성우들인 오승룡과 김종성이 겨우 말렸을 정도. 위에 언급된 초등학생 남아 성추행 사건에 대해 비판을 받기는 하였지만 1990대를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와 시대상 성추행이라 인식하지 못했을 점을 참작하여 조심하라는 의견이 더 많습니다. 대부분 "오래오래 사세요!"나 "뉴스나 검색 순위에서는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의견들이 주를 이루며 모두까기 성향의 디시인사이드 내에서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해는 건들지 말라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디시인사이드가 그렇듯이 송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과거 가짜 약 판매 사건을 들먹이며 비하하는 글과 동조하는 댓글들이 여럿 올라오기도 했으며, 단순히 재미를 위해 죽음을 희화화하는 드립을 치는 댓글이 여럿 있었지만 넌씨눈 취급 당하기 일쑤.
- 운동이나 대중교통 외에 장수의 비결들을 밝혔는데, 첫 번째로 한 달에 두세 번은 치과 가기, 두 번째로 생전 우거지와 우거지국밥을 즐겨 먹었으며, 세 번째로 매일 16시에 목욕탕에서 새로운 물로 목욕을 하고, 네 번째로 22시에는 잠을 자려고 애쓰고 아침 식사는 꾸준히 잘 챙겨 먹었다고 합니다.
- 위에 말했듯 대중교통을 이용해 지하철, 특히 수도권 전철 3호선에서의 목격담이 자주 들렸습니다. 현재 자택이 있는 아파트의 소재지가 매봉역 인근인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이라고 알려졌으며, 그가 주로 나타나는 곳이 종로3가역 인근으로 그 역 1번 출구 앞, 탑골공원 동쪽에 '송해길'이 조성되었습니다. 본인이 황해도 실향민 출신이라 종로구 낙원동에 '연예인 상록회'라는 사무실을 열고, 이 곳을 기점으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이에 종로문화원은 오랜 기간 대중문화 발전에 힘써온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2016년 8월 송해길을 만들었는데, 참고로 해당 길은 실제 도로명은 아니며, 실제 도로 명칭은 수표로로, 수표로 중에서 종로2가~낙원상가에 해당되는 구간의 명예 도로명이 송해길입니다. 실제 도로명에는 생존 중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 코미디언 이주일은 2002년 사망하기 직전에 낸 회고록인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에서 송해를 직접 언급하면서 서영춘, 이기동 등이 모두 먼저 갔는데 송해만 오래 있고 전국노래자랑을 오래 진행을 하다 보니 선배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것 같다는 언급을 하였습니다. 생년에 있어서는 이주일이 송해보다 13년이나 연하지만, 폐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 송해는 구봉서보다 1살 연하이고 구봉서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2016년 구봉서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국 희극계의 최고 원로가 되었으며 본인을 비롯해 희극계의 아우들이 형님의 뒤를 위해 뛰겠다고 말하였습니다.
- 2011년 추석을 목표로 단독 콘서트를 준비해 성공리에 서울 공연을 마치고 10월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진행했습니다. 생애 첫 콘서트이며 이름하여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쇼', 당시 만 84세의 나이로 최고령 단독 콘서트 부문 세계 기네스북 기록 등재를 추진했지만 등재되지는 못했습니다.
- 2010년대 들어서면서 광고에도 간간이 출연했는데, 후배 코미디언 강호동과 함께 명인제약의 잇몸 치료제인 이가탄 광고를 찍었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IBK기업은행 홍보대사에 위촉되어 광고에 특별출연했습니다. 특히 기업은행 광고의 경우, 노년층들에게 'IBK기업은행에 기업이 아닌 개인이 예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규모의 예금이 들어온다고 하며, 직접적으로 '송해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노인들 사이에 송해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여담이지만, 같이 기업은행 광고를 찍은 김유빈과의 나이차는 78살입니다. 김유빈은 2005년생(2005년 당시 송해는 만 78세)입니다. 2016년에 나온 기업은행 광고에서는 딘딘과 함께 랩을 선보였습니다.
- 전원주와는 12살 차이의 띠동갑으로 같은 토끼띠다.
- 2015년 11월, 역대 최고령 맥심 표지 모델이 되었습니다. 해당기사
- 원로 가수 손인호와 동갑입니다. 게다가 둘 다 고향이 이북으로 실향민 출신입니다. 손인호는 2016년 7월 16일 오전에 간경화로 먼저 사망했습니다.
- 북한군 장관(인민무력부장)을 역임한 김영춘과 닮았습니다. 사진은 TV조선의 토크쇼 노코멘트 송해 편에 등장했습니다.
- 2013년 12월 8일에 방송된 도전 1000곡에 후배 코미디언 류담과 함께 출연해 우승했습니다.
-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2015년 3월 19일 방영분에 황해도 대표로 특별출연하였습니다. 역대 최고령 게스트로 분위기도 폭발적이었습니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줬습니다. 부른 곡은 자신의 이야기를 닮은 유랑청춘입니다. 또한 위에 나오듯 드라마 프로듀사 12화에 특별출연하여 KBS 신입 PD 백승찬이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술을 할 줄 아냐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 2015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KBS 나를 돌아봐에 출연했습니다. 매니저 역할은 조우종. 이 프로그램으로 KBS 연예대상에서 조우종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받았습니다.'해이드'라는 별명을 나를 돌아봐에 출연하여 얻게 되었는데, 부산광역시에서의 에피소드에서 조우종이 그를 낚은 것도 있고 같이 못 자겠다고 하는데 조우종이 계속 같이 자야한다고 하자 결국 폭발해버린 것. 이 에피소드 당시 조우종은 대선배이자 어르신에게 도가 지나쳤다며 대차게 까였습니다. 나를 돌아봐에서 해이드 말고 얻은 별명은 '해형'입니다.나를 돌아봐의 '우종데이' 에피소드에서 조우종이 진행한 조우종의 뮤직쇼에 스머프 분장을 하고 출연했습니다. 얼굴 전체와 목에 귀까지 모두 파랗게 칠하는데, 당시 분장할 때는 불편해하다 막상 분장이 끝나니 귀엽다는 말이 기분이 좋아졌던 듯. 파랗게 칠해진 자신의 얼굴을 보며 "야! 이런! 이런! 이런!"이라고 호통치며 놀라는 모습이 압권입니다.
- '해이드'라는 별명을 나를 돌아봐에 출연하여 얻게 되었는데, 부산광역시에서의 에피소드에서 조우종이 그를 낚은 것도 있고 같이 못 자겠다고 하는데 조우종이 계속 같이 자야한다고 하자 결국 폭발해버린 것. 이 에피소드 당시 조우종은 대선배이자 어르신에게 도가 지나쳤다며 대차게 까였습니다. 나를 돌아봐에서 해이드 말고 얻은 별명은 '해형'입니다.
- 나를 돌아봐의 '우종데이' 에피소드에서 조우종이 진행한 조우종의 뮤직쇼에 스머프 분장을 하고 출연했습니다. 얼굴 전체와 목에 귀까지 모두 파랗게 칠하는데, 당시 분장할 때는 불편해하다 막상 분장이 끝나니 귀엽다는 말이 기분이 좋아졌던 듯. 파랗게 칠해진 자신의 얼굴을 보며 "야! 이런! 이런! 이런!"이라고 호통치며 놀라는 모습이 압권입니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 KBS 개표방송에 개표 그래픽으로 출연했습니다. 제목은 전국노래자랑을 패러디한 '전국 득표자랑'입니다. 이 그래픽에서 시작할 때 "전국 득표자랑"을 외치며 시작하고 1위 후보자에게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2018년 7월 23일, 앨범 딴따라를 발매했습니다.
- 편강한방연구소에서는 '구전녹용'의 광고 명예 모델로 송해를 발탁했다고 합니다.
- 가요무대에 자주 출연하는 편.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래 실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리고 고령이라서 현대적 트로트라는 장르가 정착되기 전인 해방 전후에서 1960년대 노래를 그 시절 창법으로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 2020년 엠넷 부캐 선발대회에 '아리송해'로 출전해 등장하는 순간 모든 출연자가 기립하고 공손해지게 하는 힘을 보여줬습니다. 인순이 역시 참가자였는데 본인이 가장 고참인줄 알았다가 송해의 등장과 함께 양손을 모으고 90도 인사하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 전국노래자랑 후계자로 이상벽이 적당하다고 말했는데, 그 때문에 이상벽이 자꾸 "그 자리를 언제 줄거냐?"고 물어보면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고 말해 이상벽이 울상을 지으면서 그럼 제 나이가 90살이 넘어가 버립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상벽도 송해보다 20세 정도 어려서 그렇지 70살을 넘은 상황입니다.
- 2021년 11월 18일, 송해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이 개봉하였습니다.
- 2022년 설연휴 중이던 2022년 1월 31일, KBS 2TV에서 설 대기획 프로그램인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하였습니다. 송해의 인생을 트로트 뮤지컬로 재구성한 것으로, 가수 정동원, 이찬원, 영탁, 신유 등이 나이별로 송해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습니다.
- 과거에 골초였다고 합니다. 30대 중반까지는 하루도 담배 없이는 못 살 정도로 담배를 입에 물고 다녔다고 하며, 담배를 무려 3갑 ~ 4갑이나 피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 병원에 찾아갔을 때 의사로부터 폐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말을 듣고도 병원 옆 동산에 올라가 담배를 입에 물었고 그 순간 '이걸 계속 피우면 죽는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결국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고 합니다.
- 유희열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아내 석옥이가 유희열의 고모와 절친한 사입니다. 대화의 희열 출연하기 전, 유희열의 고모로부터 '희열의 어머니가 많이 아파서 상심이 클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었고, 이에 방송 중 송해가 유희열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유희열도 장난스럽게 송해의 손등에 얼굴을 묻었다가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올랐는지 오열하는 모습이 방송을 탔습니다.
- 2013년 3월부터 쓰는 안경이 기존의 타원형 안경에서 남색 테의 둥근 안경으로 한 차례 바뀌었습니다. 다만 2016년에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출시되었을 때에는 타원형 안경 시절과 남색 둥근테 안경 시절의 얼굴 사진이 병용되었습니다.
- 199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병원에 자주 입원하기는 했지만, 죽는 그날까지 딱히 지병을 앓지는 않았으며, 게다가 휠체어는 물론 지팡이조차도 사용하지 않았고, 사망 전날까지도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정정했다고 합니다.
21. 성향, 취향 관련
- 연예계가 다 아는 대단한 주당이라고 합니다. 이용식, 김학래 등의 후배 연예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송해와의 술자리라고 할 정도이니 말 다한 셈입니다. 퀴즈쇼 사총사에서 자신의 주량이 소주 다섯 잔이라고 했지만, 김인협이 소주 5병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관련 영상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번 이상은 언급하는 게 송해의 인생사 아니면 술자리 이야기인데, 그 중 술 자리 얘기는 하나같이 깨알이 넘치게 재미있습니다. 아래는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제주도에서 친한 이상벽(1947년생)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상벽이 먼저 술에 취해 송해가 업고 숙소로 온 적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상벽은 한창 때는 술집에 들어갈 때 술의 재고를 물어보고 들어갔다고 할 정도로 방송인 사이에서 주당으로 소문났었습니다.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하기 전날, 해당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권해 송해와 자치단체장, 혹은 자치단체장이 술에 취해 다음날 녹화에 지장이 생길 뻔한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전국노래자랑 악단장 신재동이 녹화 전날에 제작진과 송해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는데, 송해의 주량을 따라가지 못한 신재동은 숙소의 아무 방이나 들어가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송해는 마스터키를 들고 숙소의 방문 하나하나를 다 따가면서 신재동을 주구장창 찾았다고 합니다.드라마 프로듀사에 카메오로 출연할 때 주당 소재를 활용했습니다. 송해 인터뷰는 일종의 신입 PD 신고식으로 불린다고 합니다.이용식은 송해와의 술자리가 길어지자 큰 그릇을 밑에 숨겨두고 술을 마시는 척 그릇에 따라 버렸는데, 송해가 한참 술을 마시다 "넌 꼭 그렇게 모아서 마시는 거 좋아하더라."는 말과 함께 들켰다고 합니다.(관련 영상)신재동(전국노래자랑 2대 악단장)과 김명선이 진행하는 '콩자반쇼'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전국노래자랑의 야외 공연이 중단된 이후 지인이나 친구와 약주를 하였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95세의 나이임에도 체력이 아직 남아 있어 술이 입에 들어간다는 건재함을 과시하였습니다.
- 제주도에서 친한 이상벽(1947년생)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상벽이 먼저 술에 취해 송해가 업고 숙소로 온 적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상벽은 한창 때는 술집에 들어갈 때 술의 재고를 물어보고 들어갔다고 할 정도로 방송인 사이에서 주당으로 소문났었습니다.
-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하기 전날, 해당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권해 송해와 자치단체장, 혹은 자치단체장이 술에 취해 다음날 녹화에 지장이 생길 뻔한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 전국노래자랑 악단장 신재동이 녹화 전날에 제작진과 송해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는데, 송해의 주량을 따라가지 못한 신재동은 숙소의 아무 방이나 들어가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송해는 마스터키를 들고 숙소의 방문 하나하나를 다 따가면서 신재동을 주구장창 찾았다고 합니다.
- 드라마 프로듀사에 카메오로 출연할 때 주당 소재를 활용했습니다. 송해 인터뷰는 일종의 신입 PD 신고식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 이용식은 송해와의 술자리가 길어지자 큰 그릇을 밑에 숨겨두고 술을 마시는 척 그릇에 따라 버렸는데, 송해가 한참 술을 마시다 "넌 꼭 그렇게 모아서 마시는 거 좋아하더라."는 말과 함께 들켰다고 합니다.(관련 영상)
- 신재동(전국노래자랑 2대 악단장)과 김명선이 진행하는 '콩자반쇼'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전국노래자랑의 야외 공연이 중단된 이후 지인이나 친구와 약주를 하였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95세의 나이임에도 체력이 아직 남아 있어 술이 입에 들어간다는 건재함을 과시하였습니다.
- 위에 상술했듯이 우거지국밥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그 외에 소고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 역시나 마찬가지로 상술했듯이 목욕 마니아다. 장수의 비결을 목욕탕이라고 밝혔으며 발가벗고 주민들과 대화를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재밌게도 송해가 목욕하면 뽀송뽀송해라는 아재 개그가 있습니다.
- 1920년대생이기 때문에 주로 부르는 애창곡이 1930~60년대 노래이며 주로 백년설, 남인수, 박재홍 등 일제 강점기 유명 가수의 노래들을 가요무대나 리메이크 앨범을 통해 많이 불렀습니다.
- 지각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합니다. 상술한 예능 프로그램 '나를 돌아봐'에서 조우종이 늘 지각했을 때 송해가 혼낼 정도였습니다. 이외에도 장윤정이 신인 시절 때 지각을 해 혼이 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 지각을 하거나 연예인으로서 격식을 차리지 않을 경우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금방 누그러지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금방 화낸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녹화 진행을 한다고 합니다. 생전 거의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으며 장기간 리허설임에도 불구하고 고령의 나이임에도 절대로 앉는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이라고 합니다. 여자친구의 최연장자인 1995년생 소원과는 68년, 1996년생인 예린과는 69년 차이, 1997년생인 은하와 유주와는 정확히 70년 차이, 1998년생인 신비와 엄지와는 71년 차이가 납니다. 여자친구 멤버들은 거의 증손녀뻘, 아무리 낮게 잡아도 손녀뻘입니다. 버디에는 고연령층 팬이 많다고 합니다.
- 김혜수의 팬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나를 돌아봐에서 조우종이 김혜수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게 해준다고 약속을 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김혜수가 오지 않아 빈정상해 서울로 가겠다 할 정도.
22. 사망 전후 관련
- KBS 측에서는 송해가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전국노래자랑 녹화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본인이 의사를 밝힌다면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하여 이에 대한 검토와 계획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끝내 고인이 됨에 따라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워낙 고령에다 건강도 좋지 않아 머나먼 지방 원정은 무리일 수도 있고, 대신 자택과 가까운 KBS 본관 스튜디오에서의 녹화 방송 등을 계획하였다고.
- 사망 당일인 6월 8일 긴급 편성으로 생로병사의 비밀과 더 라이브 방송은 결방하고 22시에 추모 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편성하였으며 클로징 멘트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그를 추모하였습니다. 또한 9일 19시 40분에는 한국인의 밥상을 결방하고 국민 MC 송해 추모 다큐 '내 인생 딩동댕'을 편성했습니다. 내 인생 딩동댕의 내레이션은 전국 노래자랑 스페셜을 함께 진행한 임수민이 담당했습니다. 원래 KBS 1TV의 19시 40분 시간대는 지역방송 시간대이지만, 월요일과 목요일은 전국 방송으로 진행되어 전국에 방송되었습니다.
- 12일에 방송될 전국노래자랑은 송해 추모 특집 생방송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예정대로 이호섭과 임수민의 진행과 신재동을 위시한 악단의 연주로 생방송으로 진행했고, 패널로는 현숙, 엄영수, 설운도, 배일호, 박서진이 나왔으며, 방송 말미에는 장윤정도 나왔습니다. 침울한 분위기였으며 설운도는 너무 슬픈 나머지 송해의 '유랑청춘'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통곡하였습니다. 차분히 진행하였던 이호섭도 송해와의 추억 회상에 결국 눈물을 쏟았다고...
- MBN에서도 22시 30분부터 송해야 고향 가자를, TV CHOSUN에서는 22시에 추모 특선 영화로 송해 1927을 편성해 방영하였고, iHQ는 6월 12일 은밀한 뉴스룸 송해 특집편인 30회를 재방송하여 송해를 추모하였습니다.
- 송해가 사후 추서받은 금관문화훈장은 문화계 훈장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방송예술인으로는 윤여정 이후 두 번째, 희극인으로는 최초의 수훈 사례가 되었습니다. 금관문화훈장이 수훈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위대한 근현대 문화예술계의 위인들에게만 허락된 훈장이라는 점에서, 그가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 야놀자에서 AI 딥페이크를 이용해 송해를 모델로 내세운 광고를 게재했으나, 5일 만인 2022년 6월 8일에 부고가 들려오는 바람에 매우 난감하게 됐습니다. 야놀자는 송해 관련 광고 캠페인 게재를 전면 중단했으며, 유가족과 상의한 후에 광고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 합니다. 유튜브 영상은 영원한 국민MC 송해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타이틀로 바꿔 재업로드하였고, 이후 추모 형식의 광고도 업로드하였습니다. 원래 광고는 나중에 "건강한 모습으로 즐거움을 전하고자 하셨던 故 송해 선생님의 뜻에 따라 사전 제작됐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반부와 하단에 붙여 다시 게재되었습니다. 2주 동안 송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후 야놀자에 따르면 강호동이 송해가 찍은 광고 컨셉 그대로 이어받아 출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수익은 코미디언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고.
- 생전에 표지 모델로 출연한 맥심에서도 공식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당시 표지와 미공개 사진(아래), 미공개 인터뷰를 올리며 추모했습니다. ,
- 송해와 절친인 작곡가이자 전국노래자랑 악단장 신재동은 김명선과 같이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콩자반쇼 라이브 방송에 불참하였습니다.
- 2021년 9월 13일에 송해와의 인터뷰 동영상을 업로드한 근황올림픽은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댓글을 수정하여 송해를 추모하였으며 수익 창출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 사망일인 6월 8일은 공교롭게도 전국노래자랑 의왕시 예심 경연이 있던 날입니다. 담당 작가는 예심을 진행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웠으나, 오히려 즐겁게 진행하는 것이 고인의 뜻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예정대로 예심을 진행하였고, 6월 10일로 예정된 현장 녹화도 정상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 2022년 6월 9일 KBS 1TV를 통해 방영된 추모 다큐에 의하면, 송해는 투병 이후 부쩍 체중이 줄어 다음 방송 출연을 위해 새로 양복을 맞추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맞춤 양복은 공교롭게도 그의 사망일에 완성되어 그 옷을 입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악단장으로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에 동행한 신재동은, 송해가 지인에게 맞춤 양복을 주문했던 이유는 그 양복을 입고 마지막 인사를 국민들에게 해야 되겠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그 의미를 밝혔습니다. 즉, 송해는 죽기 직전까지도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를 다하려 했던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도는 입관식 영상에는 그 양복이 아닌, 평범한 삼베 수의를 입고 입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도 '송해길'에 있는 단골 백반집에 들러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더덕구이나 된장찌개를 주로 즐긴 송해는 그날은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보통 밥 한 공기를 다 비우던 송해가 그 날만큼은 반 공기밖에 먹지 못했다고...
- 장례 중에 송해의 수양딸이라고 주장하는 한 50대 여자가 빈소에서 난동을 피우려다 쫓겨난 사실과 정치병 환자인 한 클리앙 유저가 송해가 "박정희 시대 유신만이 살 길이다 외치고 평생 호의호식했다"면서 "고평가됐다"는 허위사실이 적힌 악플을 쓴 사실들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습니다.
- 6월 10일 발인 후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노제가 엄수되었습니다. 이때 한국방송공사 사장 김의철과 그와 30년 이상을 동행한 전국노래자랑 악단의 연주가 그를 맞았는데,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곡이 조곡으로 연주되었습니다. 같은 곡조임에도 장중한 분위기로 연주되어 그를 떠나보내는 비통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후 악단은 올드 랭 사인과 송해 본인의 곡인 '나팔꽃 인생'을 석별의 곡으로 이어 연주하였습니다.
- 송해 사망 소식 이후 네이버 뉴스의 기사 하단 감정 스티커를 없앤 것의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네이버 뉴스의 감정 스티커는 원래 '좋아요', '훈훈해요', '슬퍼요', '화나요', '후속기사 원해요' 등 다섯 가지였으나 4월 28일부터 '흥미진진', '후속강추', '쏠쏠정보' 등 부정적이거나 슬픈 감정을 쓰지 못하도록 바꾸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떠한 감정 표현을 골라도 모두 고인드립이 되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를 지적한 댓글이 베댓을 차지했습니다. 반응
- 추모사와 추모글로 '전국'과 '천국'이 발음이 유사함을 이용한 '천국 노래자랑'이 많이 쓰였습니다. 고인드립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송해 영결식에서 이용식이 추모사에 이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러한 논란은 잦아들었습니다.
- 6월 19일 송해의 제2의 고향인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에서 서예가 김동우와 고살풀이 춤 보존회장 이희숙이 송해를 추모하는 서예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 6월 19일 드림 콘서트 트롯에서 MC 이찬원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송해와의 추억을 회상을 하며 송해가 있었기에 후배 트롯 가수들이 무대에 설 수 있게 되고 크게 될 수 있었다며 감사함과 영원한 딴따라로 가슴 깊이 영원히 새긴다며 추모를 하였습니다.
- 6월 20일 롯데시네마에 따르면 22일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 추모 상영회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 송해가 사망한 6월 8일 이후 전국노래자랑과 송해에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6월 둘째 주 콘텐츠영향력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기사
23.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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